〈사설〉OPEC유가, 붕괴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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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유가체계가 크나큰 혼란에 빠져들면서 세계석유시장은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80년대의 세계경기후퇴와 함께 기반이 약화되어온 OPEC유가체제는 급속한 수요감퇴에 더하여 비OPEC산유국들의 산유량증대로 최근 5년간 줄곧 불안정을 증대시켜왔다.
이같은 OPEC의 불안정은 곧 세계석유시장에서의 영향력 감퇴와 회원국간의 불화마저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특히 지난해 이후 두드러진 회원국들간의 보조불일치는 각국의 이해가 워낙 엇갈린 탓도 있었지만 OPEC공시유가제의 유지를 위한 마지막 안간힘으로 결정된 산유쿼터마저 지키기 어려울 지경에까지 이르러 있다. 지난 1월 공시가를 배럴당 1달러씩 내린 뒤에도 각 회원국들은 전비를 비롯한 각종 재원조달을 위해 공시가이하로 덤핑하면서 산유량도 쿼터이상으로 늘려왔다.
이같은 덤핑과 쿼터초과생산량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감산으로 겨우 지탱, 공시유가제의 명맥을 유지해 왔으나 이제 사우디아라비아마저 감산의 한계에 직면해 있다. 쿼터의 절반이하만으로 버텨온 사우디아라비아는 더이상 재정난을 감당키 어려워짐으로써 OPEC 공시가체제의 견인차역을 내놓지않으면 안 될 입장이다.
이번 OPEC시장 감시위원장인 아랍에미리트연합 석유상의 공시가 붕괴선언은 저간의 이같은 사정을 고려할 때 전혀 놀랄일은 아니다.
전량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석유 카르텔 가격의 와해가 곧 유가인하를 의미하므로 당장의 석유비용부담이 덜어지는 것을 반가와할 입장이다.
더우기 수출부진과 경기침체에 직면해 있는 우리 경제는 유가인하폭에 따라 국제수지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수 있고,국내 경기에도 자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지금의 우리에겐 매우 긴요하고 절실한 기대지만 의외로 그같은 기대는 제한적으로,또는 단기적으로만 실현될지도 모른다.
우선 무엇보다도 현재의 OPEC 체제내 불화와 보조불일치가 과연 전면적인 공시가체계붕괴로까지 이어질 것인지가 관심사다. 과거 10여년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OPEC 카르텔은 회원국들 각자의 취약성으로 인해 의외로 강인한 결속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비록 세계불경기라는 특별한 시장조건때문에 구매자시장으로 변모했지만 여전히 OPEC는 세계 석유거래의 60%가까운 비중을 갖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카르텔을 벗어날만큼 세계시장에의 적응력을 갖추지 못했다. 공시가체제의 붕괴가 군소회원국들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그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구책을 찾아낼 것이다.
더 중요한 측면은 서방소비국들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유가폭락과 석유수입의 격감이 세계의 금융유통에 어떤 충격을 줄 것인지는 짐작이 어렵지 않다. OPEC의 붕괴가 동서간, 특히 미소간의 역관계에 미칠 영향도 서방측은 계산하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다.
이런 사정들은 최근의 OPEC 혼선이 의외로 단기적이며 일상적인 것일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로서는 성급한 판단이나 지레짐작으로 안정적인 석유조달에 차질을 빚어서는 안되고 더더구나 석유사정을 낙관하거나 소비절약을 늦추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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