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보상 먼저 vs 이주 먼저…원전 문제로 갈라진 신리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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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 동네에서 60년을 살았는데 동네가 절단 났다 아이가. 이제 어떻게 사노? 이웃 간 정이 없어져 얄궂다. 합의되게 도와주이소.”

신고리 원전 5·6호기 들어설 곳
울주군 관리 맡은 보상금 1538억
집행 방법 놓고 주민 의견 갈려
갈등 해소 위해 ‘보상협의회’ 구성

7일 오전 울산시 울주군 신암리 신리마을의 포구 앞에서 만난 박봉남(81)할머니의 하소연이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에 따른 보상금을 놓고 동네 민심이 두 쪽으로 쪼개졌다는 것이다. 박 할머니는 “신고리 원전 3·4호기 건설 때나 지금이나 사정이 비슷하다. 이런 일이 반복돼 더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신리 일대 270만6000여㎡에 8조6000억원을 들여 신고리 원전 5·6호기(시설용량 1400㎿ 2기)를 이달 중 착공해 2021년, 2022년 각각 준공할 계획이다. 하지만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원전에서 반경 560m는 거주 제한구역이어서 사람이 살 수 없다. 신리마을 220여 가구 대부분이 이 제한구역에 포함된다. 한수원은 주민 반발을 우려해 일부 560m밖의 가구까지 보상해달라는 주민 요구를 받아들였다.

보상대상은 신리마을 토지 610필지 29만여㎡, 건물 4424건 등으로 보상금만 1538억원에 이른다. 한수원은 이 보상금 지급을 울주군에 맡겼다. 이 보상금에는 이주택지조성과 이사비 등 은 포함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5년여 전부터 보상금 1500여억원을 어떻게 집행할지를 놓고 마찰을 빚고 있다. 주민 이주가 우선돼야 한다는 신리마을 보상 및 이주생계대책위원회(대책위, 150여 가구)와 토지 등을 우선 매수해달라는 신리마을 이주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70여 가구)로 나뉜 것이다. 보상이 언제 마무리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토지·집값 하락이 우려된다는 게 비대위 주장이다.

손복락 대책위원장은 “보상 감정이 마무리되면 이를 인정하지 않는 주민을 무시한 채 한수원이 강제 이주를 추진할 수도 있다”며 “이주에 따른 생계대책을 먼저 합의한 뒤 토지 등의 보상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하섭 비대위 간사는 “신고리 3·4호기의 경우 15년 만에 보상 작업이 마무리됐다”며 “땅값 하락 등이 우려돼 토지 등을 먼저 매수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갈등이 심해지자 최근 대책위와 비대위는 ‘보상협의회’ 구성을 조율 중이다. 보상협의회 전체 위원 16명 가운데 한수원·울주군이 8명을 선정하고, 마을위원 8명 가운데 대책위가 5명, 비대위가 3명을 구성키로 의논 중인 것이다. 또 보상 감정업체는 비대위에서 추천한 업체로 한다는 안을 검토 중이다.

이들 단체는 “주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양측이 자기주장을 자제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합의내용은 다음주 나올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울주군과 한수원 측은 “보상협의회에서 주민 합의안이 나오면 감정평가 업무를 진행하고 주민 이주문제도 구체적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보상 문제가 마무리되면 신고리 5·6호기 건설 사업은 속도를 낼 전망이다.

강승우 기자 kang.seu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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