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다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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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호 35면

샤넬 매장 앞에서(2015 봄/여름 컬렉션).

상자에 고이 모아둔 리본 가운데 유난히 고운 것들이 보이면 가만두고 싶지 않다. 묶은 머리를 입히는 색색의 리본 자락은 어른이 된 소녀가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치렁한 머리를 그대로 놔두는 이유는 머리를 ‘꽃단장’시키기 위해서다. 웃기는 이야기겠지만, 이 나이가 되어서도 긴 머리를 꾸며주는 짓을 즐긴다. 땋은 머리끝에 댕기를 매거나 리본을 묶고 다니던 옛날처럼 말이다. 머리에 뭔가를 한다는 건 ‘잘 보여야 하는’ 곳으로 간다는 의미가 있다. ‘까까옷’을 입고 정갈하게 땋은 머리에 붉은색 댕기를 매주는 엄마의 손놀림이 좋았다. 연분홍색 리본이 더해진 머리가 폼 난다고 생각했다. 돌돌 말린 리본 끈을 조심스럽게 풀어 기막히게 필요한 만큼만 똑 자르던 엄마의 가위가 들렸던 손과 사각사각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떨어지던 매끈한 리본 자락. 리본을 보면 여성적 감각을세련되게 뽑아냈던 엄마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옷처럼 머리도 파티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리본 하나가 묶이고 둘, 셋이 가세하니 고갯짓으로 바람이 만들어진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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