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레터] 정부의 과잉방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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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박근혜 대통령이 상시 청문회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중요 사안을 전자결재로 처리하는 건 적절치 않다던 박 대통령이 이번엔 아프리카에서 전자결재로 처리했습니다. 국회 권한이 세지는 데 대한 거부감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야당은 즉각 반발하며 여소야대의 20대 국회에서 재추진하겠다고 합니다. 20대 국회 초반부터 여야, 그리고 국회-행정부 간에 대결 국면이 전개될 전망입니다.

국회의원들의 저질 질의, 비효율적 진행, 안하무인의 태도 등을 이유로 상시 청문회에 반대하는 분들이 적잖습니다. 또 세종시의 공무원을 수시로 불러 청문회에 세우는 것은 행정부에 대한 과잉견제라는 우려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상시 청문회에 앞서 국회 스스로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국회의 기능 확대를 위한 법안을 대통령이 거부하는 것은 과잉방어 아닐까요. 우리 정치엔 과잉방어 사례들이 몇몇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5년 단임제입니다. 독재정권의 장기집권을 막기 위한 것인데, 이젠 과잉방어 장치가 돼버렸습니다. 다수의 횡포를 막는다는 국회선진화법도 과반수 의사결정을 제한한다는 면에서 과잉방어의 성격이 짙습니다. 부정부패를 막겠다는 김영란법도 그와 비슷하다고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현안 가운데엔 정부가 손댔다 말끔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 이 경우 국회 내부에서 연소시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제도권으로 불이 번지거나,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앙금이 계속 쌓여 갑니다. 그러다 정권이 바뀌면 다시 끄집어내 털고 넘어가기도 합니다. 제대로 된 상시 청문회라면 그런 후진적 관행을 개선시켜줄 수 있을 텐데, 박 대통령은 그럴 가능성을 제로로 보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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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엔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했습니다. NHK 등 일본 TV들은 생방송으로 이를 전하더군요. 미국에선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면죄부를 줬다는 반대론이 만만찮다고 합니다. 물론 일본은 역사적인 외교성과로 자축하는 분위기입니다. 아무리 평화에 방점을 찍은 이벤트라 하지만, 침략의 피해자에겐 아무래도 거북스러운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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