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192. 잃는 게 더 많은 판정 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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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메이저리그에는 불문율이 있다. 모두가 그 불문율을 따른다. 그 가운데 심판의 권위에 대한 부분이 있다. 포수는 자신이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한 공을 심판이 볼로 판정했다고 해서 미트를 움직이지 않고 불만을 표시해선 안 된다. 또 누구도 경기가 끝난 뒤 심판 판정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 등이다.

포수의 그런 행동은 오히려 심판을 자극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또 심판은 선수가 판정에 대해 거론하는 것을 심판 권위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여긴다. 그들은 이런 행동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

박찬호도 이런 불문율을 잘 알고 있다. 데뷔 초기 그는 사석에서 "심판 판정이 모호해도 불만을 표시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 다음 경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고, 심판들 사이에서 평판이 나빠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뒤 그는 판정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누군가 "오늘 판정이 좀 모호했던 부분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질문하면 "그렇게 보셨으면 그런 거겠죠"라고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그런 그가 19일 오클랜드전이 끝나고 판정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아쉽게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지 못했다(Unfortunately, I didn't get the call)"라는 완곡한 표현을 썼다. 1회 초 에릭 차베스와 에루비엘 두라조 두 왼쪽타자를 상대로 던진 박찬호의 몸쪽 직구는 아슬아슬했다. 모두 볼이 됐다. 그래서 두 번 모두 볼카운트 0-3으로 몰렸다. 그때 박찬호는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마운드를 두 번이나 벗어났다. 그 두 타자에게 볼넷-안타를 차례로 허용한 박찬호는 1사 만루의 위기에서 내야플라이 두 개를 잡아내 위기를 벗어났지만 1회 초 투구수는 25개나 됐고, 몸쪽 직구에 대한 자신감과 그 공에 대한 심판의 신뢰를 잃었다. 경기를 어렵게 끌고 간 큰 이유다.

1977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칼럼니스트 조지 윌은 그의 책 '멘 앳 워크(Men at work)'에서 "신인급 투수가 베테랑 타자를 만나면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지고, 베테랑 투수가 햇병아리 타자를 만나면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진다"고 썼다. 좀 과장해서 '잘 치는 타자가 안 치면 볼, 잘 던지는 투수가 비슷하게 던지면 스트라이크'라는 경향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말이다. 심판이 선수에 따라 심리적으로 좌우되는 경향을 인정하고, 그런 부분을 경기의 일부분으로 지적한 내용이다.

차베스와 두라조는 오클랜드의 3, 4번 타자이자 메이저리그 올스타다. 박찬호는 한때 올스타였지만 지금은 평범한 선발투수다. 이 둘이 만났을 때 심리적인 판정에서 손해를 보는 쪽은 박찬호가 된다. 이 부분은 분명 존재하고, 박찬호가 마운드에서 극복해야 할 '경기의 일부분(part of the game)'이다.

<텍사스에서>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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