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이웃사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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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며칠 전부터 이상한 냄새가 나긴 했었지만 그냥 생선썩는 냄새 정도로만 알았어요.』『김씨가 안보인게 벌써 언젠데요. 진작 들어가 봤어야 하는건데….』
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한강변의 10평짜리 아파트촌.
경찰차가 몰려들면서 504호집 주인아저씨가 마루 밑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는 말을 들은 아파트주민들은 모두 마당으로 몰려나와 당황하고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서로 수군대고 있었다.
경찰은 지난 3일께로 범행시간을 추정했다.
꼭 1주일만에 발견된 이웃집아저씨의 죽음.
한동에 30가구가 모여 살면서, 계단 하나놓고 3집이 나란히 붙어 살면서도 이웃집 주인의 죽음이 알려지지 않았고 삼복더위는 1주일이나 계속되었던 것이다.
『언제 반상회엘 한번 제대로 나오길 했나요. 어쩌다 김씨집 문이 열려있어 들여다보기라도 할라치면 저리 가라고 손을 내젓는 바람에 자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이모씨·43·이웃주부)
『말도 없고 사람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인상이어서 사람이 안보여도 신경쓸 생각을 못했지요.』 (정모씨·54·이웃주부)
『먹고 살기 바쁜 세상이라 이런 일도 벌어지는가 봅니다.』 (임모씨·29)
범인은 범행후 쇠망치를 깨끗이 씻고 마루에 묻은 피를 닦아낸 다음 열쇠를 챙겨 밖에서 출입문을 잠그고 유유히 (?) 달아났다.
지난 4월 서울 화곡동 모녀피살사건 때도 한집에 5가구나 사는 이웃들이 모녀의 죽음을 1주일이 지나도록 몰랐었다.
1천만의 서울. 그러나 한가구 식구들 끼리만 살고 있는 서울. <민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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