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의 진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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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양 김씨의 발언에서 비롯된 요즘의 정국긴장은 더 이상의 「확전」을 않기로 한 민정당의 방침에 따라 일단은 가라앉았다.
충돌 일보 전까지 이를 것 같던 상황이 한 고비 넘긴 것은 다행스럽지만 그것이 일과성 한냉기류가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여야는 기회 있을 때마다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선의의 경쟁자끼리 말로써 못 풀 일이 어디 있겠느냐 면서도 실제로는 대결의 태세를 하고있는 양상이다.
국민들의 정국을 보는 눈이 불안한 까닭은 거기에 있다. 임시국회폐회후의 정국은 사실상 고헌이란 최대이슈를 기축으로 해서 움직이고 있다.
지자제·광주사태·사면·복권 등 정치현안이 많지만 개헌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어려운 문제들이다.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정국의 흐름은 지난번 선거 때 직선제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신민당이 제1야당으로 부상함으로써 예고되었던 것이다. 12대초에 파문을 일으킨 이민우 신민당총재의 산께이 회견도 그런 움직임의 하나였던 셈이다.
시국에 대한 여야의 날카로운 견해차로 보아 어차피 대결로 치달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비관론이 상당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성급하게 대결이 불가피하다 여기는 것은 정치인이 취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닐뿐더러 정치를 포기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다.
두 김씨가 민주화일정에 관하여 가을정국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내년 봄 이후 정국에 예기치 않은 『불행한 사태』가 올 우려가 있다고 한 것은 적어도 좌우를 충분히 잰 신중한 발언이라고 보아주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국정을 주도할 책임을 지고있는 정당임을 자부하고있는 민정당이 초강경 용어를 구사해서 과민반응을 보인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안전판도, 조정자도 없는 여건에서 여야가 다분히 감정을 앞세워 대결로만 치닫는다면 어찌되겠는가. 그 다음에 올 것은 파국이다. 또다시 파국이 올 경우 민생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정파도 득 볼 것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뿐이다. 대화를 통해 공생의 길을 찾는 것이다. 엄연히 있는 세력을 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며 그렇게 하는데 얼마나 큰 무리가 따르는지는 유신시대의 정치사가 교훈하고있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과 함께 민의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출발이며 기본인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신민당이 개헌에 대한 민의파악을 위해 9월 정기국회에 앞서 공청회를 열 계획이고 이에 맞서 민정당 역시 민의 수렴에 나서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한마디로 민의라지만 쉽게 파악되는 것은 아니다. 양으로 측정한 민의못지 않게 질로도 측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 민의다. 민의의 질을 측정하려면 사회각층과 여러 그룹이 활발한 토론을 거쳐야하며 합리적인 절충과정도 있어야 할 것이다.
원칙적으로 민의는 어느·정파가 편리할대로 왜곡되거나 조작될 성질의 것이 아닌데다가 지금 국민들의 의식수준은 한껏 높아졌다는 점도 직시해야 한다. 감정을 앞세운 말씨름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회의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모든 정치현안에 대해 확고한 논리를 세워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지금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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