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 버스 타고 다녀…돈 없어 대출받아 집 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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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강영훈 전 국무총리는 1990년 12월 총리직 퇴임이 임박하자 큰아들 성룡씨에게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자택의 수리를 지시했다. 53년부터 소유해 온 집이었다. 당시 모아놓은 돈이 많지 않아 은행 대출을 받아 수리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강 전 총리는 퇴임 직후엔 버스를 타고 다녔다.

소탈·강직했던 강 전 총리

버스에서 사람들이 “강 총리 아니시냐”고 물어보면 그는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많지요”라며 웃어넘겼다고 한다. 성룡씨는 “사치는 전혀 모르시고 굉장히 소탈하셨다”며 “당신이 쓰신 감투를 내려놓은 뒤엔 완전히 평범한 평민으로 돌아가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된다고 생각하셨다”고 말했다.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에도 충정로 자택 근처 이발소를 애용했다.

소탈한 성품이었지만 총리로선 강직했다. 강 전 총리는 회고록 『나라를 사랑한 벽창우』에서 “대통령 비서실 비서관이 자기 의견을 당돌하게 이야기할 땐 ‘그 말이 대통령의 의견입니까?’라고 되묻곤 했다”며 “나의 직선적인 언행이 대통령 비서실을 불편하게 했겠지만 총리 직무를 바르게 수행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신념과 자세를 지키는 데는 고집 센 벽창우셨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경청하고 포용하셨던 분”이라며 “공인으로선 가장 전범이 되는 인격자였다”고 추모했다.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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