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질투심|유계준<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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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금년 대학에 입학한 남학생이 교정을 거닐다가 아름다운 여학생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그러나 말을 붙일 용기가 나지 않아 먼발치에서만 곁눈질하면서 여학생이 다니는 길목만 지키기 1주일만에 그녀가 아는 체를 하는 것이 아닌가. 며칠 밤을 지새우던 그가 이번에는 큰마음 먹고 다가가서 대뜸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깜짝 놀란 여학생이 도망을 치자 그만 거절당한 것으로 생각한 그는 절망에 빠졌다. 그런 후 그 여학생이 다른 남학생과 함께 가는 모습을 본 다음부터 그녀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하도 그녀를 헐뜯기에 친구가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이 그녀의 웃는 얼굴, 걷는 모습이 여학생답지 못하게 천박하고 헤프다는 것이었다.
몇 달 후에는 같은 반의 여학생들을 미워하며 그들의 행동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집안에서는 누나의 옷치장까지 간섭하게 됐다. 엄마가 조금만 늦게 귀가해도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고 불평했고, 가족들이 텔리비전을 보다가 웃어도 자기를 비웃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아파트단지 안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비웃음으로 생각한 나머지 이사를 가자고 조른다. 이 학생은 피해망상으로 결국 입원하게 됐다.
투사심리(투사심리) 란 자신의 내부에서 불안감이나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속성들, 즉 양심에 거리끼는 욕심이나 남을 증오하고 싶은 충동 등을 타인의 속성으로 둘러씌우는 심리현상이다. 남의 잘못을 지나치게 파고들며 비판하는 것은 그런 잘못을 일으킬 수 있는 충동이 자신 속에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반대로 타인의 잘못에 대해 지나치게 관용적인 것도 마찬가지 속성이다. 투사된 속성은 타인의 것이나 실상은 자기 속성의 그림자인 것이다.
남을 헐뜯고 비난하거나 불평· 불만을 내뿜으며 남이 잘한 것에 대해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것도, 남을 믿지 못하고 의심만 하는 것도, 더 나아가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다 이 투사심리 현상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행한 일에 책임을 질줄 모르고 자기의 과오를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부모가 있다면 그런 부모의 언행을 배우며 자라는 어린이들은 결국 조그마한 장애에도 쉽게 좌절할 뿐 아니라 좌절감에서 생긴 증오심을 타인에게 투사함으로써 정신적으로 병든 자신을 더욱 심화시키게 된다.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볼 수 있어도 제 눈의 대들보를 볼 수 없는 것도 이 투사심리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자신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지고,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스스럼없이 남에게 전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성장해야 큰 후에도 건강한 사회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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