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 북한의 셀프 핵보유국 선언과 한반도 정세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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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 트렌드라는 것이 있다. 현대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거대한 물결을 말한다. 세계적인 포럼의 주제에서 메가 트렌드를 찾아 볼 수 있다. 매년 정초에 스위스에서 개최되는 다보스 포럼의 주제를 보면 그 해의 메가 트렌드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 달 개최된 국내의 대표적인 싱크 탱크 연차 포럼의 주제는 ‘뉴 노말(New Normal)’이었다. 새로운 물결로 보이는 뉴 노말은 어브노말(Abnormal 비정상)이 아니고 새로운(뉴) 노말로 인정하고 대처하자는 긍정적인 표현이다.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미소 양극의 세계질서가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로 수년간 이어져 왔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 개방에 따른 고도성장은 중국의 부상을 가져왔고 세계질서는 중국을 빼 놓을 수 없게 되었다.

한편 2008년 리만 쇼크 이후 미국 경제의 급속한 쇠퇴는 미국 일극 중심의 세계 질서는 무너지고 중국과 여타 국가로 다극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가치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새로운 질서인 ‘뉴 노말’이 나타나고 있다.

‘뉴 노말’은 ‘신창타이(新常態)’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 사용되면서 정치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급속히 확산되었다. ‘과거와 다른 새로운 일상적 형태’라는 의미의 신창타이는 2014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중국의 저성장 경제상황을 설명하면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25년 이상 10% 대의 초고속 성장을 이룬 중국이 최근 몇 년간 6-7% 대의 중 고속 성장으로 떨어진 것을 인정하자는 의미이다.
그러나 ‘뉴 노말’로 용인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지난 5월 6-7일에 걸친 북한의 조선노동당 7차 당 대회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북한이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핵전파방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세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모든 국가가 북한의 핵보유를 용납할 수 없는 ‘어브노말’이라고 비난하지만 북한의 김정은은 36년만에 개최된 이번 당대회를 통해 세계가 북한의 핵보유를 ‘뉴 노말’로 받아들이기를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이나 일본이 핵보유국이 되는 것은 세계의 비핵화 노력으로 막아 보겠다는 것이다.

어린 나이에 정권을 잡은 김정은은 카리스마를 가진 할아버지, 오랜 후계자 위치에서 자신감을 가진 아버지와 달리 항상 불안하다. 경험이 없는 김정은은 이러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보다 강하게 보여야 했다.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거나 승진과 강등을 손바닥 뒤집듯이 하는 군 인사 개입 등 김정은의 유례없는 공포정치는 자신이 최고 지도자임을 확인시키고 싶어서이다. 김정은은 자신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면서 핵 보유 자체가 통치의 정당성으로 생각하고 있다.

김정은은 ‘주권이 침해되지 않는 한 핵무기 사용을 하지 않겠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시험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공격을 억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번 당 대회를 계기로 셀프 핵보유국을 ‘뉴 노말’로 인정받고 인민을 먹여 살리는 경제문제에 집중하겠다는 발상을 보이고 있다. 이른 바 핵개발과 경제 발전을 동시하는 ‘핵-경제 병진노선’이다.

세계는 북한이 선군(先軍)정치를 띄어 넘은 선핵(先核)정치를 비판한다. 김정은이 주장하는 ‘뉴 노말’을 ‘비핵화 노말’로 바꾸기 위해 한국을 위시하여 미국과 중국의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달 말 베이징에서 개최된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 회의(CICA) 외상회의의 기조연설에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북한이 새로운 도발 등 핵 보유를 고집할 경우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를 전면적으로 완전하게 집행할 것을 강조하였다.

안보리 대북 결의를 전면적으로 완전하게 집행한다는 의미를 북한은 알고 있다. 북한의 대외 교역의 90%는 중국과 이루어진다. 무역은 북한 정권의 존립과 관계된다. 중국과 북한의 접경에서 일어나고 있는 밀무역까지 중국이 막아 낸다면 북한이 생존하기 힘들다.
최근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 무드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제가 중요하지만 제재만으로 북한의 위협을 줄일 수 없다. 경험이 없고 무모한 김정은이 제재의 코너에 몰릴 때 더 큰 일을 저질는지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북한을 제외한 관련 당사국들이 모여 북한의 핵 보유 프로그램에 재갈을 물릴 수 있는 협상의 활성화하는 권하고 있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의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최근 방한하여 북미간의 평화협정 문제를 한국정부에 타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화협정은 1953년 정전협정을 대체하기 위한 협상이다.

이수용 북한 외무상이 지난 해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새로운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라는 주장을 하였고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협정 논의의 병행을 제안하고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북한이 비핵화 협상하면 평화협정도 가능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앞으로 북한의 핵보유국이 되는 ‘뉴 노말’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물밑 협상이 예상된다. 문제는 북한의 진정성이다. 북한의 김정은이 자신의 통치 정당성으로 내 세우고 있는 핵을 포기하고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의 핵공격을 막기 위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도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도날드 트럼프 경선 후보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되었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려는 ‘뉴 노말’을 둘러 싼 동북아의 정세는 더욱 복잡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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