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계획 확 바꿔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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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호 24면

당신이 그리는 노년기는 무엇인가.


거의 예외없이 자식들이 좋은 직업을 갖고, 독립해서 잘 살고, 본인도 평화로운 은퇴생활을 하는 것이라 말한다. 우리는 인생 성적표를 세 번 받는데 아이가 대학 갈 때, 취직할 때, 그리고 결혼할 때라고 한다. 자기 인생인데도 성적표는 아이가 어느 대학에 가서 어디에 취직해 누구랑 결혼하는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이상하지 않나.


아이 키우기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을 일본의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결국 편안한 노후를 기대하는 부모의 이기주의에 다름아니다’라고 냉소적인 일갈을 날렸다. 이런 방식은 지난 세대에는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앞으로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일러스트 강일구

지난 세대에는 20대 중반에 아이를 낳았고, 취직도 빨랐다. 그리고 60세까지는 대부분 일을 할 수 있었고, 자식도 20대 중반이면 취직을 했다. 그러니 부모 나이 50세부터 10년 정도는 두 세대가 쌍끌이로 돈을 버는 시기가 있었다. 평균수명도 짧아서 은퇴 후 오래 되지 않아 사망했다.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30대 초반에 자식을 낳고, 평균 은퇴 연령은 53세다. 일을 그만뒀는데, 아직 아이는 20대 초반이다. 평균 취직 연령은 31세가 되었다. 이전 세대의 쌍끌이와 정반대로 가족 중 돈 버는 사람이 없는 10년을 버텨야한다. 경쟁을 뚫고 겨우 취직을 했다고 고생 끝이 아니다. 신입사원도 구조조정 대상에 올리고, 인공지능과 좁은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해야한다. 평균수명이 80대 중반으로 연장되면서 의료비용 등이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죽기 1년 전에 생애 의료비의 3분의 1을 쓴다는 통계가 있다.


내가 성공했으니 내가 했던 방식대로 살면 될 거라고 여기면 안된다. 지금 중장년 세대는 단군이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기 부모보다 성공한 세대일 것이라 한다. 이미 과도한 자식농사 투자로 인한 균열이 보이고 있다. OECD 국가 중 노인빈곤률 49%, 노인자살률이 10만 명당 120명으로 2관왕이다. 5년 새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은 60세 이상 환자가 34% 늘어 전체 증가율(16%)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제는 노년기에 대한 로드맵을 획기적으로 바꿔야한다. 내가 그리는 이상적 노후는 이렇다. 주 2회 친구들과 만나 등산을 하고 난 후 보쌈에 소주 한 잔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꾸준한 인간관계, 운동을 할 건강, 외식이 가능한 경제적 여유라는 세 가지 조건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제일 큰 선물이라고 믿는다. 전반적으로 건강해서 혼자 병원에 다니니 월차를 내거나 가게 문을 닫고 데려다 주지 않아도 되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필요 없으니 자식 입장에서는 그만큼 수입이 증가한 셈이다. 적절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으니 굳이 아이들에게 의지해서 살 필요가 없다.


자식이 잘 되면 기뻐할 일이지 인생의 성적표가 돼서는 안된다. 애가 잘 안되도 자존심은 상할 수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그것도 인생인데. 이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아이가 아닌 나를 중심으로 20년 후의 그림을 그리고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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