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 다리서 만난 여성이 좋은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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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호 28면

알파고는 무생물이다. 알고리즘에 따라 확률을 계산할 뿐 의식도 무의식도 없다. 반면 이세돌의 몸은 생명체이다. 대국 중에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가야 한다. 물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몸은 본능적으로 작동한다. 우리의 뇌는 몸의 본능적 반응을 일일이 의식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몸이 느끼는 감정의 원인을 의식할 수 있는 대상에서 찾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을 ‘귀인 오류’라 하는데, 단지 어떤 의자에 앉느냐에 따라 의사결정이 달라질 만큼 일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미국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논문에 의하면, 자동차 딜러와 새 차를 사기 위한 협상에서 푹신한 의자에 앉은 고객들이 제시한 금액이 딱딱한 의자에 앉은 사람들보다 높았다. 푹신한 촉감이 주는 감정적 편안함을 협상가격에 대한 만족감으로 착각한 것이다.


귀인 오류는 입사 면접같이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는 상황에서도 발생한다. 예일대학교 존 바그(John Bargh) 교수의 실험에 의하면, 따뜻한 음료를 손에 든 면접관은 인터뷰 상대를 따뜻한 사람이라 느낀 반면, 차가운 음료를 손에 든 면접관은 동일한 사람을 차갑게 느꼈다. 미국 MIT대 연구에서도 면접관은 같은 내용의 이력서라도 무거울수록 이력서의 주인공을 더욱 진지하고 좋게 평가하였다. 심지어 면접관이 인터뷰 직전에 무거운 물건을 잠시 들고만 있어도 면접 결과는 부정적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인지조차 못하는 사소한 자극이 중요한 결정에 개입한 것이다.


다소 엉뚱해 보이는 귀인 오류는 40여년 전 미국 컬럼비아대학 연구팀의 유명한 ‘흔들 다리’ 실험에서 밝혀졌다. 연구팀은 실험에 참석한 남성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흔들리는 다리를, 다른 그룹은 단단하게 고정된 다리를 건너게 했다. 다리 중간에서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여성이 설문조사를 진행한 후 남성들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실험결과, 흔들 다리를 건넌 남성의 50%가 여성에게 전화한 반면, 단단한 다리를 건넌 남성은 12.5%만이 전화를 했다. 흔들 다리를 건너며 심장 박동이 빨라진 남성들은 설문조사를 했던 여성 때문에 가슴이 뛴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미국 뉴욕주립대 연구팀의 후속 연구에 의하면, 실제 심장박동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심장이 뛴다는 생각만으로도 귀인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에 참여한 남성들은 10명의 여성 사진을 앞에 두고,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를 스피커로 들으면서 매력적이라고 생각되는 여성들을 선택했다.


예상대로 남성들은 자신의 심장을 뛰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한 여성들을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연구팀이 들려 준 심장박동 소리는 실험자의 실제 심장 박동과 반대로 녹음한 가짜였다. 즉 귀인 오류는 신체 반응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생각으로도 발생한다.


우리의 뇌는 몸의 변화를 인지하는 데 취약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외부 자극이 생성한 감정을 눈 앞에 있는 대상과 쉽게 연결하려 한다. 그 대가로 인지적 편안함을 얻지만, 엉뚱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거나 음료수나 의자 등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린다. 몸의 반응은 무의식적이지만, 원인과 결과를 추론하는 것은 의식적 과정이다. 중요한 결정을 내린 후 우리의 뇌가 느끼는 만족감은 어쩌면 화창한 날씨, 맛있는 식사, 푹신한 소파가 만들어 낸 기분 탓일 수도 있다. 우리의 몸이 생명체인 이상 귀인 오류는 피할 수 없다. 이세돌의 1승은 그래서 위대하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부대표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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