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의 『안팎』 조정권의 『허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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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6인 신작시집」(창비) 에 실린 김지하의 「안팎」을 읽어보면 상반되는 마음의 두 상태가 서로 만나 새로운 마음의 상태를 창조하는 과정을 잘 살필 수 있다. 그 과정은 구호나 헛소리가 아닌 예술작품이 흔히 겪는 과정이다.
이 시는 시인의 감옥생활에서 얻은 다섯개의 단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 시인은 창살 밖에서 활보하는 자들을<날으는 묶인 새> 로 판단하고 <내가 끝끝내 나팔소리 울리면 스러져갈 새>로 표현한다. 언젠가 감옥에서 나가 부숴버릴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다. 복수의감정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시인의 도덕적 우월감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러나 다음 단상 2에서는 시인 자신의 또 하나의 마음의 상태가 표출된다. 감옥에 갇힌 자신에 눈길이 돌려질 때 갖게 되는 자기비하 혹은 자아파기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자신이 인간이 아니고 <참새라면 쥐라면 파리 모기 빈대라면>으로 시작되어 그 마음의 상태는 <차라리 아예 태어나지 말았더라면>에 까지 이른다. 그것은 앞의 상태와 정반대를 이루어 긴장을 일으킨다.
다음 단상에서는 그러나 그 긴장속에 면회 온 어머니가 들어와서 정신적인 변화의 촉매가 된다. 거기에 이어지는 4는 어머니와 「나」 사이의 이중창같은 대화다. 그 대화를 통해 1과 2의 대립이 사라지고 새로운 마음의 상태가 창조된다.

<벽 속에 누군가 누워 있는데 거기 내가>로 시작되어 <밖에서 소리없이 온종일을 누가 걷고 있는데 내 속에 내가 그>로 끝나는 이 상황은 우월감도, 비하도 아닌 안과 밖이 합쳐서 하나가 되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세계는 안과 밖이 사라진 새 인간을 보는 새 의미의 세계다.
「안팎」은 김씨가 최근 시도하고 있는 거창한 작품 「남」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기지와 풍자가 난무하는 「남」은 시인의 안과 밖이 만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작업을 해내지 못하고 그대로 마구 섞여 있는 작품인 것이다. 게다가 길기는 왜 또 그리 긴지(앞으로도 20여권 더 필요하다니), 이야기하는 김에 내놓고 말하자면 「동양최대의 규모」같은 것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의 마음 한 가닥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고려미륵불이 턱없이 커지는 것이 불교나 미학의 발전과 무관하다는 것은 이따금 재음미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정권의 「허심」(현대문학)은 흔히 지나치기 쉬운 작품이다. 그것은 제일 첫항의<늙으면 발목족을 따스한데 두는 것일까>같은 그럴듯한 몰취미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참고 읽으면 집채만한 바위를 동아줄로 꽁꽁 묶는 이야기나 자신의 시집을 아는 분이 꽁꽁 묶어 보내주는 섬뜩한 일이 대조되는 삶의 한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하고, 마지막에 가서 꽃피는 존재들의 아름다움을 밤을 따뜻하게 해서 내놓는 정신적인 마음씨로 환치시킨 눈에 선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는 것이다. <저마다들 몇 밤만 지내면 나간다는 소리까지 들리다니 오늘은 일제히 움을 찢고 새파랗게 잎순이 나왔읍니다 아 참 반갑습니다 뜨시뜨시한 밥 한사발 아랫목방석 밑에 감추어 두었다가 내미는 마음,> 이런 귀와 눈과 마음도 우리 삶에 의미를 주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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