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사제관계를 생각한다|나의 스승을 말한다|"아무쪼록 인간답거라"던 말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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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무쪼록 지혜롭거라, 건강하여라, 그리고 인간답거라! 선머슴처럼 덤벙거리는 나의 어깨를 따뜻한 손길로 지그시 누르시며 타이르시던 어버이·스승들의 인자한 모습들.
그 여러 모습들 가운데 오늘 유독히 떠오르는 얼굴은 국민학교때 담임이셨던 조규열선생님이시다.
그 분이 나의 모교인 경포국민학교에 부임하신것은 6·25의 전화가 온 나라를 휩쓸던 1950년 무렵, 그러니까 내가 5학년 때였다. 교실은 폭격에 불타버렸고, 우리는 솔밭이나 황량한 빈터에서 공부해야했다. 궂은 날이면 일제때의 낡은 게따공장이나, 공회당이나, 아니면 오죽헌의 마루방을 옮겨다니면서 짧은 글짓기며 산수며 우리나라 역사를 배웠다.
선생님은 옆구리에 늘 책을 끼고 다니셨다. 주위와 잘 어울리지 않으며 약간은 창백하면서 이지적인 얼굴 표정은 옆구리의 책과 어울려 높은 이상의 소유자처럼 근엄해 보였고, 나도 커서 저런 멋진 모습을 할 수 있을까 바라곤 했다.
『때는 바야흐로…』
짧은 글짓기를 하게 하시고 선생님은 저만큼 둔덕의 풀밭에 가 앉으셨다.
멀리 공병대가 지나가며 부르는 군가소리가 들려왔다. 둔중한 군용트럭이 구름 같은 먼지를 일으키며 신작로를 달려간다. 선생님은 그 모든 것을 보고 듣고 계셨다. 우리는 『때는 바야흐로』 를넣어 짧은 글들을 지었다.
그런데 당시 20대 중반의 청년이셨던 선생님의 세월은 『때는 바야흐로』 어떠했었을까. 실은 그 고뇌와 우수에 찬 선생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찢어질듯한 시대의 아픔을 읽고 배웠던 것이다.
수업이 시작되면 우리말 어휘의 자상한 설명과 『삼국유사』에서 단종비화에 이르는 역사얘기등 수업의 열기로 그분의 창백한 얼굴은 붉게 상기되시곤 했다.
졸업식을 마치고 헤어질 때 선생님은 『얘들아, 부평초 알지? 부평초처럼 되지 말고 저 소나무처럼 변함 없이 굳세게 살아야한다』 하시면서 그 그늘아래서 공부하던 오죽헌 뒷산의 아름드리 적송을 가리키셨다.
이제 육순을 바라보시는 선생님, 요즈음 부쩍 건강이 나빠지셨다는 소식을 엊그제의 동창회에서 들었다. 아무쪼록 속히 쾌차하시기를 두 손모아 비는 마음이다. 이기웅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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