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서울 낙산밑 옛 서울대학자리에 문화의 거리와 함께 풍류마당이 열린다.
12일 개장에 이어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엔 홍겨운 놀이판이 벌어질 모양이다.
각박하고 이욕스럽기만한 서울에 이렇게 여유있고 운치있는 곳이 생겨난다는 것만도 흐뭇하다. 「풍류」는 「속된 일을 떠나서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것」이다.
「풍」자만 생각하면 「바람」과 「바람기」를 연상하지만 그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풍은 풍속을 의미하기도 하고 경치를 뜻하기도 한다. 위엄을 나타낼 때도 있다.
그래서 「풍아」라고 하면 『시경』의 국풍과 대아 소아를 발하고 시가와 문장까지 뜻한다.
『문선』 에는 「풍아지도 찬연가관」(풍아의 도는 찬연하여 볼만하다)이라고 했다. 그게바로 풍류와 도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풍류는 음악을 뜻하기도 한다.
풍류객은 풍치가 있고 멋스립게 지내는 사람이 되고, 「풍류놀이」는 시도 짓고 노래도하고 술도 마시며 춤도 추고 하는 놀이가 된다.
「풍류마당」은 풍류를 아는 사람들이 모여 풍류놀이를 즐기는 곳이 될수 밖에 없다.
그러나 풍류마당의 풍류는 더 유원한 뜻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삼국사기』에 인용된 임치원의 「난랑비 서문」에는 풍류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일컬어 풍류라, 설교의 근원이 선사에 상비하였으니, 실로 이일교를 포함하고 군생을 접화한 것이다』란 대목이다.
삼교가 유교와 불교와 도교인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풍류도가 우리 민족의 고유한 도요, 정신이며 사상이란게 눈부시게 나타난다.
그 풍류도와 유·불·도등삼교를 이은 것이 화낭도다.
국선화낭은 낭도들과 더불어 산야를 유관하며 정신과 육체를 아울러 단련하고 인격과 성정을 바로하기에 힘썼다는 것이 역사의 기록이다.
신라가 그 화랑도로 해서 드디어는 삼국을 통일하는 민족대업을 이룰수 있었던 것은 두말할 것이없다.
그화랑의 대표적 인물들이 김춘추·김유신이고 귀산·소정(추항)이며 사다함과 궁창이었다.
그들이 모두 「도의로서 상마하고 가악으로서 상열하고 산수에 유오하되 무원부지했다」 는 풍류정신에서 나라를 부강케한 힘을 얻고 있었다는게 인상깊다.
풍류마당은 그냥 놀이마당은 아니다. 기품있고 멋진 인간들을 만나는 곳이 되어야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