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문서제출명령 거부 땐 불이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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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해 3월 농협 조합장 선거에서 낙선한 김모씨는 곧바로 “선거가 무효임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무자격 조합원 상당수가 투표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1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심리를 받지 못한 채 대전지방법원 민사11부에 머물러 있다. 피고가 핵심 증거에 대한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에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소송 상대 측 주장 다 사실로 간주
대법, 즉시항고 폐지 법 개정 추진

투표에 참여한 무자격 조합원 수가 당락을 가를 정도였는지가 관건인 사건의 성격상 조합 측이 가지고 있는 ‘2014년 조합원 개별실태조사서’는 핵심 증거다. 김씨의 문서제출명령 신청을 재판부가 받아들였지만 조합은 대형 로펌의 조언에 따라 즉시항고(대전고법)와 재항고(대법원)를 했다. 문서제출명령은 지난 1월에야 확정됐다. 그사이 신임 조합장은 이미 2년 임기의 절반을 채웠다.

이 같은 문제를 없애기 위해 대법원이 문서제출명령에 대한 즉시항고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의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최근 이상민(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하는 형식으로 냈다고 20일 밝혔다. 여기에는 문서제출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신청인이 해당 문서에 기재돼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과 이 내용을 통해 입증하려는 주장까지 재판부가 모두 사실로 간주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법원 관계자는 “민사 재판부가 신속하게 실체적 진실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 사실심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민사사건에서 피고가 지닌 문서는 막연한 주장이 아닌 사건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증거다. 2011년 3056건이었던 문서제출명령 건수는 지난해 8824건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명령에 불복해 재판을 고의 지연시키는 게 가능하고 명령에 따르지 않아도 불이익이 미미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문서제출명령에 대한 즉시항고와 재항고를 처리하는 데 걸린 평균 기간은 362일이었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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