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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록 보관소 세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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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12일부터 대학로 마로니에 미술관에선 '광복 60년, 사진 60년-시대와 사람들'이라는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작고한 임응식 선생부터 신인 작가까지 55명의 한국 사진가들이 참여했다.

사진들은 1945년부터 오늘까지 우리 삶의 다양한 장면들을 보여 준다. 그뿐만 아니라 사진을 통해 그런 사건들을 사진작가들이 개인적으로 어떻게 겪었고, 어떻게 보았고, 또 전문작가로서 어떤 각도로 접근하고 또 어떻게 형상으로 포착해 냈느냐를 살펴볼 수 있어 다각적인 의미에서 흥미있다. 우리 사회의 집단적 경험을 상기시켜 주는 동시에 각 작가의 개별적 시선을 느끼게 해주는 전시회이며 그 자체로서 한국 사진사의 한 단면이다.

각각의 사진이 보여 주는 미학적 기준, 사진의 용도와 역할에 대한 작가들 나름의 생각은 다르지만 거칠게 말해 기록성과 예술성, 또는 사실성과 조형성, 또는 역사성과 보편성 사이의 대립과 긴장 가운데 각 작가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작품을 직접 보고 가늠해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다.

한 사람의 관람객으로서 나는 이 전시회를 기획하고 조직한 사람들의 노력에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나는 이런 사진 전시회를 꾸미는 데 얼마나 투철한 의지와 눈물겨운 인내가 필요한지 조금은 안다. 단지 예산상의 속박만이 아니라 사진 전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몰지각, 그리고 냉대로 말미암은 잘못된 관행, 소위 사진계 내부의 이해관계, 해묵은 갈등과 불신.오해가 작가와 선정, 작품의 수집과 전시 등 단계마다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번 전시회의 주된 기획자이자 전시 책임자인 사진작가 정인숙은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이런 난관이나 고충보다 더 근원적인 자원의 결핍을 얘기한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전시회를 계속하려 해도 보존된 사진자료 자체가 얼마 되지 않아 큰 문제라는 것이다. 많은 돈을 주고 대여하고 복사하려 해도 동원할 수 있는 전시 자원 자체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그나마 날이 갈수록 고갈되어 간다는 이야기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얼마 후 한국의 사진 역사에 대해 정작 본격적인 연구를 하려 해도 기본 자료가 없어 난관에 부닥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사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지속적 무지와 천대가 빚어낸 필연적 결과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을 터이다.

한 장의 사진이 함축하는 의미는 의외로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사진의 의미는 그 사진을 해독하는 행위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므로 그 해독이 어떤 상황, 어떤 맥락에 따라 어떤 주체에 의해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무한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화 콘텐트라는 말이 마치 이 시대의 으뜸가는 화두인 것처럼 유행하지만 사진 자료야말로 영상 콘텐트의 기본이고 다양한 문화 콘텐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필수적 자원 가운데 하나다.

카메라가 소위 디카라는 이름으로 대량 보급되고 있는 지금 사진은 맘만 먹으면 항상 찍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론상 무한히 복제 가능한 것이니까 보존할 가치가 없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사진 이미지 역시 엄연히 물건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감광유제가 발린 네가 필름과 종이 인화지로 보존되는 소위 재래식 아날로그 사진은 특히 그렇다. 그리고 그런 사진들은 과거의 시간을 담고 있는 역사의 자료다.

그런 사진들은 소중하게 보관해야 한다. 복사본을 따로 만들고 도록으로 출간하고 디지털로 전환하는 것도 보관의 여러 방법 중 하나다. 그러나 오리지널이 한번 없어지면 모든 게 끝이다. 사진기록 보관소이든, 사진사 박물관이든 어떤 명칭이나 형태로든 국가적 차원에서 한국 사진사 아카이브가 구축되어야 한다.

최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