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권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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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권투가 위험한 운동이란 건 이미 알려져 있다.
이번의 경우는 선수가 헤드기어까지 쓰고 경기를 한 아마추어 복싱이어서 일반의 충격은 훨씬 크다.
사고의 주인공은 주먹을 턱에 맞고 다운되면서 뒷머리를 링바닥에 부딪쳤다.
진단결과는 경막하혈종에 중증뇌좌상이었다. 뇌막 아래에 핏줄이 터져 혹처럼 된 상태다. 이 불의의 사고로 헤드기어만 끼면 안전하다는 막연한 기대가 무참히 무너졌다.
헤드기어만이 아니라 권투에 사용되는 글러브 매트 등 호신용구들이 선수 보호에 별로 큰 도움이 못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내선수가 경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은 1930년 9월 프로 복싱의 김정연선수가 처음이다.
그는 일본에서 벌어진 필리핀「보비·윌스」와의 경기에서 KO패한 뒤 뇌진탕으로 12시간만에 사망했다.
61년 12월엔 송재구가 미국의 「솔」에게 KO패한 뒤 숨졌다.
그리고 82년 11월 김득구가 미국에서 「레이·맨시니」와 WBA 라이트급 챔피언 타이틀전을 벌이다 KO패한 뒤 사흘만에 사망했다.
세계적으로는 1897년 12월 밴텀급 세계타이틀매치에서 「월터·크루트」가 챔피언 「지미·배러」에게 KO패, 사망한 후 지금까지 88년 동안 4백여명의 희생자를 기록하고 있다.
83년 「판·크루즈」에게 KO패한 뒤 사망한 「페레스」는 그 전해에 「프레드·보먼」을 죽음으로 몰았던 장본인이란 게 밝혀진 일도 있다.
그 때문에 캐나다 터론토대학의 「앨런·허드슨」박사는 81년 복싱특별조사위원회에서 『권투는 뇌손상을 대가로 돈을 버는 운동이며 방어가 불가능하다』고 규정했다.
「피에르·르·블랑」박사는 『인체에서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머리를 때리는 운동이 어떻게 스포츠인가』고 혹평한 적도 있다.
미국 남가주대학의 「킹·에인절」박사는 『구조상 어느 복서도 안전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가슴이나 배를 맞아도 두뇌에 손상이 온다』고 하는 학자도 있다.
실제 이번 사고로 헤드기어를 쓰고 하는 아마 권투조차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위험이 있다고 해서 스포츠 경기 자체가 없어지리라 곤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선수보호를 위한 제도와 장구의 연구가 좀더 절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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