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옥시, 책임 피하려 법인 청산 의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가습기 살균제 제조·유통사인 옥시레킷벤키저(현 RB코리아)가 법인 청산과 새 법인 등록 절차를 밟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인의 성격도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변경됐다. 이에 따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꼼수’를 둔 것 아니냐 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회사는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판매했다.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사망으로 정부가 인정한 146명 중 약 70%가 이 제품을 사용했다.

형사법상 법인 없으면 공소기각
검찰 "대표 등 과실치사 적용 가능”

검찰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11년 12월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해 설립 등기를 했다. 기존 법인을 해산한 뒤 주주·사원, 재산, 상호만 그대로 남겨 두고 완전히 다른 법인을 신설했다. 회사의 범죄 혐의가 확인되면 위법행위자뿐 아니라 법인도 함께 처벌받는다. 하지만 피고인이 사망하거나 피고인인 법인이 존속하지 않으면 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된다. 법원이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해 소송을 끝내는 것이다. 유한회사는 주식회사와 달리 회사 주요 정보에 대한 공시 의무가 없기 때문에 이 같은 법인 청산과 등록에 대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이 회사의 법인 청산과 등록이 진행된 때는 질병관리본부(질본)가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한 실험 결과를 발표한 직후였다. 당시 질본은 “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간의 인과관계가 입증됐다”고 발표했다.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부장검사) 관계자는 13일 “법인 변경 의도도 수사 범위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다음 주에 이 회사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법인 자체에는 형사적 책임을 묻기 어려울 수 있지만 신현우(68) 전 대표 등 당시 회사 관계자들에게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들이 제품의 유해성을 알고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게 수사의 핵심이다. 수사팀은 피해자 220여 명을 조사한 뒤 시판된 가습기 살균제 중 4개 제품이 폐 손상을 일으켰다고 결론을 내렸다.

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