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주산학원 갈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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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엄마, 나도 주산학원에 갈래요.』
큰아이가 퇴근하는 내게 문 열어주며 볼엔 소리로 선언했다.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으며 차근차근 물었다.
유치원에서 만난 친구들이 천단위까지 척척 읽고 쓰고 셈하더란다.
달력에 나란히 줄지어 있는 서른한개의 숫자를 읽을수 있게 된 것이 스스로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웠던 아이에게는 그 엄청난(?)능력이 몹시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국민학교에 가면선생닙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라고 달래면서도 그 설득력은 내게조차 미약했다.
이러다가 내 아이만 처지게 될것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림 그리기만 해도 그렇다.
『네그림 속에는 재미있는 얘기가 많이 담겨 있다』고 칭찬해주면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흐뭇해 하곤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미술학원식의 공주님과 우주선그림이 아이 눈엔 「기가 막히게」 멋진것으로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곤 내게왜 거짓말하느냐고 항의한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마땅히 놀 친구가 없다.
친구들이 모두 각 곳으로 흩어져 보다 전문화된 교육으로 「천재」가 되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바쁜」친구들 틈에서 「바쁘지 않은」 내 아이는 스스로 비정상임를 느끼고, 또래들 속에 끼고 싶은 본능이 「학원」을 원한 것이다.
부푼 기대 속에서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행복한 보통아이」로 키우겠다는 소신이 뿌리째 흔들리는 위기인 것이다.
수 개념, 과학적이고 조직적인 사고능력 배양을 위해 주산학원에, 예술적소양 계발을위해 미술·음악학원에,더 나아가 태권도, 웅변학원등 보다세분화된 「기능」을 심어주기 위해 다른 엄마들이 불타고 있는 속에서 내가 정말 올바른 엄마 노릇을 하고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이제 여섯 살, 앞으로 이 아이가 만날 여러가지 일을 충분히 이겨낼수있는 행복한 생활에의 경험을 보다많이 주려는 내 고집은 과연 옳은것인가.
내가 세운 원칙 하나 제대로 지켜 나가는데 어려움과 괴로움을 느끼는 나는 참으로 부족하고 어리석은 엄마다. <서울 강동구 잠실본동>
@김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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