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보하는 유가 속 주춤하는 주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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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호 18면

2008년에 유가가 고점을 쳤다. 금융위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반등했지만 2011년부터 다시 하락해 최근까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유가가 떨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10년 동안 신흥국이 세계 경제를 끌고 가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면서 석유 수요가 늘고 가격이 상승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신흥국 경제가 둔화되면서 이 수요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공급은 반대로 늘어났다. 석유는 처음 자본이 투입된 후 경제성 있는 채굴 행위가 본격화될 때까지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 기간을 최대한 줄여도 10년이 필요하다. 이 사실을 현재에 적용해 보면 당분간 공급 과잉이 계속될 거란 결론이 불가피하다. 유가가 50달러를 넘은 2000년대 중반부터 석유 개발 투자가 본격화됐는데, 이 때 투자된 결과들이 지금 시장에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99년 이후 다섯배 올랐다 80% 폭락앞으로 유가가 어떻게 될까? UN 경제사회국의 이코노미스트인 빌지 어튼과 미국 컬럼비아대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 교수가 1894년 이후 원자재 가격 동향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2010년까지 1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네 번의 수퍼 사이클이 있었는데 이번이 네 번째다. 1999년에 시작됐고, 지금까지 17년이 지났다.

일러스트 강일구

이번 유가 사이클은 다른 어떤 때보다 상승률이 높았다. 저점 대비 466% 올라 두 번의 오일 쇼크가 있었던 세 번째 사이클보다 상승률이100%포인트 이상 높았다. 서부텍사스유(WTI)의 고점이 2008년 7월 14일에 기록한 배럴당 145.1달러이고, 현재까지 저점은 지난 1월의 26달러이니까 최대 82% 하락한 셈이 된다. 상승이 컸던 만큼 하락도 강하게 진행된 것이다.


유가의 고점이 이미 확인됐고, 저점도 어느 정도 확보됐지만 어려움이 끝난 건 아니다. 과거 유가 움직임을 보면 하락 초반에 가격이 격렬하게 움직인 후 오랜 시간에 걸쳐 바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이어졌다


향후 유가 움직임을 예측하기 위해 과거 유가 움직임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1980년초 배럴당 40달러였던 유가가 5년간 25달러까지 천천히 내려 온 후 86년에 갑자기 9달러까지 급락했다. 반등을 거쳐 10달러대로 복귀한 후 1999년까지 15년동안 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과거 흐름이 재현된다면 이번에도 유가는 오랜 시간 횡보할 가능성이 있다.


유가는 다른 어떤 것보다 수요와 공급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산이다. 실물로 직접 사용되기 때문이다. 어떤 가격대가 석유 수요와 공급의 균형인지 알 수 없다. 추정해 볼 뿐인데 시장이 장기간에 머문 가격대일수록 적정 가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수퍼 사이클 때 고점에서 떨어진 비율과 가격 안정성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현재 위치해 있는 30달러대도 균형점으로 가능성이 있는 수치인 것 같다.


실물 경제 호전으로 이어지기엔 시간 필요급변한 유가는 주식시장에 어떻게 영향을 줄까? 유가 사이클 전체와 주가를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서로 연관성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유가 사이클은 주기가 길기 때문에 다른 변수에 의해 주가와의 관계가 왜곡될 수 있어서다. 과거 우리나라 경제는 한번 회복되면 5년 정도 유지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둘 사이에 주기가 다르다 보니 유가가 한 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동안 경기나 금리같이 주가에 영향을 많이 주는 변수들에 의해 유가의 영향이 희석돼 버릴 수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유가와 주가의 관계를 분석할 때에는 기간을 더 세분해 경기 사이클에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거쳐 유가와 주가의 관계를 살펴 보면 장기적으로 둘은 대체로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유가가 상승할 때 주가도 상승했고, 하락할 때도 동일한 형태였다. 유가와 주가가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건 가격을 움직이는 요인이 같기 때문이다. 석유 수요가 늘어 가격 상승을 유발할 정도가 되면 실물 경제도 좋아진다. 유가가 올라갈 경우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늘어나지만, 경기가 좋아 제품 가격에 전가할 수 있으므로 이익이 늘어나고 주가도 상승한다.


당분간 유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기 힘들다. 오른다고 해봐야 하락이 컸던데 따른 반등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유가에 따라 주가가 변할 것이다. 선진국과 산유국의 정책 목표도 유가를 올리는 쪽으로 맞춰지고 있다. 가격이 급락한 만큼 불가피한 선택인데, 주식시장이 유가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이종우?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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