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웅 [서울대교수·인류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현대를 정보화 또는 정보산업의 시대라고도 한다. 세계의 구석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지고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공간적으로 확산되면서 다른 사람이 가진 기존의 아이디어들과 상호작용 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새로운 아이디어로 탄생하기도 한다. 정보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매스컴이 수행하는 긍정적인 구실은 지대하지만 부정적인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는 점이 흔히 간과되어 왔다.
특히 매스컴이 모방범죄의 형식으로 범죄의 진화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만 하겠다. 1968년대와 78년대에 전세계적으로 자주 일어났던 하이재킹은 바로 이런 예에 속한다. 사건이 터졌을 때마다 매스컴은 범죄행위의 전과정을 아주 자세하게 다룬 보도경쟁을 벌였다. 이런 보도에 접한 미래의 하이재커들은 자신의 생각과 새로 전해들은 아이디어를 종합하고 수정 보완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우게 되면서 범죄는 점차 지능화되어왔다.
최근 전국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어온 식품회사들을 상대로 한 독극물 협박사건도 바로 이런 예에 속한다. 혐의자들 중 몇 명이 체포되어 사건이 일단락 되는가 했지만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놔서 범죄자의 수는 더 많은 것 같다. 체포된 한 혐의자의 진술은 하나의 중요한 교훈을 던져주었다. 그는 사업의 실패로 돈이 필요했고, 궁색한 생활 중 신문에 난 일본의 모리나가 등 식품회사들을 상대로 한 독극물협박사건에 관한 보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비슷한 사건을 계획했었다고 진술했다.
과연 재미있는 읽을거리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나라의 범죄사건을 상세히 보도할 필요가 있을까? 국내의 범죄사건에 대한 보도도 마찬가지다. 범죄자들은 매스컴의 보도를 「교재」 로 하여 사실상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자신의 범행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긴다. 「교재」에 나타난 바의 실책은 수정 보완되어 또 다른 범죄의 형식으로 나타나는 등 매스컴을 매개체로 하여 각종 범죄의 「진화」는 계속된다.
범죄방식의 상세한 부분들이 알려졌을 때 왜 그것이 실패하였는지를 찾아내어 완전범죄를 실행에 옮겨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은 적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2, 제3의 범죄자들이 꼬리를 물고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우리가 잠재적인 범죄자들에게 그들의 충동을 자극할만한 정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언론은 바로 이런 영역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