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50억원 계좌추적할 바엔 철저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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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현대 측이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건넸다는 1백50억원에 대해 검찰이 계좌추적에 착수했다. 이에 앞서 검찰은 지난달 25일 송두환 특검팀의 수사가 사실상 끝난 직후 관련자 10여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한 바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검찰의 계좌추적 착수와 출국금지가 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한다.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이 거부된 직후 정치권에선 새 특검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나 언제 결론이 내려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측은 특검 자체에 반대하고 있는 데 비해 한나라당 측은 1백50억원의 세탁을 주도한 김영완씨가 강탈당한 1백억원대의 출처 등에 대해서도 수사범위에 포함해야 한다며 첨예하게 맞서 있다.

더구나 김영완씨는 문제의 1백50억원 외에도 2000년 별도의 1백억원 이상을 가.차명 계좌를 통해 세탁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그를 둘러싼 의혹이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이 돈의 세탁 시점이 4.13 총선 전후여서 선거자금으로 뿌려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새 특검이든 검찰이든 수사가 늦어질 경우 관련자들이 증거를 없앨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이런 국민적 의혹들을 덮어둔 채 정치권을 바라보며 기다릴 수만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검찰은 계좌추적이 이 사건에 대한 본격 수사 착수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국회에서 수사 주체가 결정될 때까지 계좌추적을 진행하다가 후속 수사팀에 관련 자료를 넘기겠다는 설명이다. 벌써부터 정치권과 검찰 주변에선 현대의 비자금 규모가 수백억원에 이르며 당시 여권 실세를 통해 정치권에 전달됐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특검에 넘기는 중간단계라는 어정쩡한 자세로 임할 것이 아니라 수사의 주체라는 생각으로 이번 사건에 임해야 한다. 계좌추적에 나선 이상 1백50억원+α의 출처와 사용처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그래야 특검이 되든 안 되든 진상이 규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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