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한풀이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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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치가 만개하고 있다. 유세장마다 가득 찬 청중, 강도 높은 발언들과 민감한 반응들을 보고 있으면 정치의 봄이 먼저 왔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일부 과열조짐을 보이는 유세장 풍경은 섬뜩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너무 틀에 매인 사고와 감정억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까.
반드시 그래서 만은 아닌 것 같다.
거기에는 선거의 일반적인 룰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긴장된 적대감이 전류처럼 팽팽하게 흐르고 있는 게 감지되는 때도 있다.
또 당선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술도 허용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들이 깔려 있지 않나하는 의구심이 드는 때도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한 후보자에게 암모니아수를 던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또 여러 곳에서 상대방후보에 대해 원색적인 인신공격·집단시위·야유 등이 자행되고 있다.
약물투척이 일종의 직접적인 폭력행위라면 도를 넘는 인신공격과 야유 또한 간접적인 폭력행위다.
그와 같은 폭력행위가 청중의 관심을 제련으로 끌어당긴다고 믿는 반면 커다란 착각 속에 빠져있는 게 아닐까싶다.
일시적인 관심의 고조가 반드시 동의의 획득을 의미하지 않는다는게 그 동안 선거사의 경험이다.
선거를 한풀이하듯 적과 싸우듯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선거란 게임과 같다. 그 게임은 의회주의라는 전제 위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의회주의가 유지되려면 상대방의 존재, 다른 의견의 존재에 대한인정이 출발점이 되어야하는 법이다.
한쪽의 일방적 독선을 무슨 방법으로든 관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논리의 포력일 수도 있으며 그런 곳에서는 선거란 불필요한 장식물이 아니냐는 회의, 지켜야할 민주제도에 대한 의구심을 낳게될 위험마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가끔 빚어지는 이 살벌한 풍경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가슴속에 품고있는 감정의 앙금을 풀 겨를도 없이 마주친 데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직접적인 방법 외의 다른 가능성이 실제로 모두 닫혀있지 않느냐 하는 항변도 나올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선거의 룰만은 지켜야 하겠다. 현행 선거법의 규제가 지나치다고 한다면 우리가 믿는 상식적인 기준에서의 일반적인 원칙이라도 지켜져야 할 것이다. 여러가지 의견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원칙 말이다. 남의 의견을 강제하는 강권이나 집단행동이 판을 쳐서는 안된다. 그것은 여든 야든 마찬가지다.
모처럼 피어오른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어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모처럼의 정치적 열기를 꺾어버리거나 위축시키는 계기를 만들어줘서도 안될 것 같다.
우리는 참으로 쓰라린 헌정사를 갖고 있는 만큼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국민의 판단력을 신뢰하면서 서로 자제력을 발휘하는 지혜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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