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조 경영참여 추진'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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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영국 정부가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경영 판단에 대해 사용자 측과 '협의'할 수 있는 권리를 노동자에게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최근 영국 정부가 유럽연합(EU)의 정보 협의 지침에 따라 사업장에서 노사관계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모든 결정사항에 대해 노동자 대표가 사용자 측과 협의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을 마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새 법안은 2005년부터 직원 1백50명 이상 사업장에서 우선 시행되고, 2008년에는 50명 이상 사업장까지 적용된다.

정부안은 "일시 해고나 노조 조직 및 노사 계약 관계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결정의 경우 노동자들이 '합의 도달을 목표로' 사측과 협상할 권한이 있다"고 규정해 노동자의 권리를 대폭 강화했다.

단순한 협의(consultation)보다 더 강력한 의무를 사측에 지운 셈이다. FT는 노동당이 6년 전 집권한 이래 노동 현장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법안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노조 지도자들은 '문화 혁명(cultural revolution)'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영국 최대의 민간부문 상급노조 아미쿠스의 로저 라이언스 사무총장은 "영국의 생산성이 다른 유럽 국가에 뒤처진 이유는 노사관계에서 참여와 개방성 정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라며 "이는 (경영진이)밀실에서 결정하는 문화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반면 경영자 단체들은 신속한 의사 결정을 가로막아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용자 단체인 영국산업연맹(CBI) 사무총장 딕비 존스는 "우량 기업들은 이미 종업원들과 충분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상의의 데이비드 프로스트 사무총장은 "새 규제로 기업은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유연성이 떨어져 경쟁력이 약화될 뿐만 아니라 외국 투자자들도 떠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좌파 노조들은 여전히 정부가 사용자 측의 로비를 받고 지나치게 양보했다고 불평하고 있다.

당초 노동조합회의(TUC) 측은 새 규정을 위반할 때 부과되는 벌금에 제한을 두지 말라고 요구했지만 CBI는 7만5천파운드(약 1억4천6백만원) 벌금 상한선과 함께 일정 수 이상 노동자의 요구가 있을 때만 새 법안을 적용한다는 '이중 안전장치'를 관철시켰다.

이 때문에 노조가 총론에서 이겼지만 각론에서는 사측이 승리했다는 평가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FT는 '잘못된 권리(wrong rights)'란 제목의 8일자 사설에서 이 법안에 우려를 표명했다.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할 만한 정보 등 이사회 입장에서 비밀 유지가 필요한 계획이 외부에 유출될 가능성이 있으며, 기업의 비용 감축을 막고 원가 상승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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