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억 들인 대전 하수 침전물 감량시설, 시운전도 못하고 11개월 동안 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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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유성구 원촌동 대전시시설관리공단 직원들이 하수슬러지 감량화시설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전시 유성구 원촌동 대전시시설관리공단에 있는 하수슬러지 감량화 시설이 세금낭비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5월 설치한 이후 고장으로 지금까지 11개월째 한번도 가동하지 못해서다. 사업비는 지금까지 84억원 정도가 쓰였는데 철거하려면 50억원이 추가로 들 전망이다.

작년 5월 시험 가동하자 마자 고장
대전시, 사용 불가 판단 … 철거 결정
시공사에 철거비 등 134억 청구키로

대전시는 하수슬러지 해양투기가 금지(2013년)됨에 따라 하수슬러지 감량화 사업에 착수했다. 염홍철 시장 재직 때인 2012년 12월 기술공모를 통한 수의계약으로 업체를 선정했다. 설계는 ㈜도화엔지니어링, 시공은 ㈜팬아시아워터가 맡았다. 총 사업비 90억5000만원가운데 30%는 국비, 나머지는 대전시 예산이다. 시는 ㈜팬아시아워터측에 53억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경영악화를 이유로 2014년 9월 사업을 포기했다. 회사 대표는 해외로 떠난 상태다. 이후 또 다른 업체가 공사를 맡아 지난해 5월 시공을 끝냈다. 미국 호크마이어사가 만든 장비다. 지름 1㎝ 크기의 세라믹 볼이 하수슬러지의 미생물 세포를 터트려 부피를 줄인 다음 물기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대전에서 발생하는 하루 102t의 하수슬러지를 53t으로 줄이는 게 목표였다. 시설관리공단측은 시공 초기 며칠 동안 시운전을 한 뒤 운영을 포기한 상태다. 장비가 자꾸 고장이 났기 때문이다. 장비는 녹이 슨 채 방치돼 있다. 총 사업비 가운데 지금까지 92.4%인 83억6000만원이 투입됐다.

대전시 관계자나 기술평가위원(대학교수 등 7명) 등은 모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기술공모에 응한 4개 업체 가운데 최신 기술 공법을 제시한 업체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당시 대전시 환경녹지국장 K씨는 “당시 어떻게 업체를 선정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했다. 기술평가위원으로 일했던 A대학 교수는 “도화엔지니어링이 응모 업체가운데 규모가 가장 커서 믿음이 갔다”고 했다.

대전시는 이 시설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철거하기로 했다. 시공 비용과 철거비 50억원 등 134억원을 설계사와 시공사에 청구한다는 방침이다. 대전시 이재면 맑은물정책과장은 “다음달 사업비와 철거비 등을 청구하고 돈을 내놓지 않으면 소송 등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화엔지니어링측은 사업비 반환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진다고 했지만, 시운전을 아직 충분히 못한 상태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장비에 문제가 있으면 수리하면 될 일이지 철거를 거론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전시의회 조원휘 의원은 “대전시가 막대한 예산이 드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기술선정위원회를 한 차례 열었을 뿐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사업은 공청회·토론회 등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시행하고, 문제가 생기면 담당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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