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맏딸 결혼식서 사회보며 통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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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부 아버지가 이렇게 떠들면 안되는데 이왕이면 우리 사회에 의미있는 결혼식을 보여주고 싶어 나서게 됐습니다. 오늘의 예식이 우리 사회의 전범(典範)으로 보편화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외국인 사위에게 전통적 혼례의 의미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난 7일 오후 6시30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2층 다이내스티홀. 동양학자 도올 김용옥(金容沃.55)씨가 자신의 맏딸 승중(承中)씨와 프랑스인 크리스탱 메누의 결혼식이 시작되자마자 단상에 올라 이같이 소감을 밝혔다. 특히 혼주가 직접 사회를 보자 4백여명의 하객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도올의 한마디 한마디에 몰입했다. 도올은 외국인들을 위해 직접 통역까지 했다.

이날 혼례는 여느 결혼식과 사뭇 다르게 진행됐다. 무엇보다도 신랑이 먼저 입장한 뒤 신부 아버지가 딸과 함께 입장하는 절차가 생략됐다. 대신 신부 측 부모와 신랑 측 부모가 차례로 입장한 뒤 양측 부모가 서로 목례로 인사를 나눴다. 이어 신랑.신부가 네명의 들러리를 뒤에 세우고 식장에 들어섰다.

이에 대해 도올은 "신랑이 신부 아버지로부터 장래의 배우자를 인계받는 의식은 여성을 하나의 소유물로 보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오늘날과 같은 민주 사회에선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불쾌하기 짝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윽고 신랑.신부가 들러리의 도움을 받아 마주 선 채 손을 씻었다. 도올은 "손을 씻음으로써 자신을 성화(聖化)해 결혼식을 치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곧이어 신랑.신부는 수작례(酬酌禮) 의식에서 술 한잔을 함께 나눠마셨다. 술을 함께 마시는 의식을 통해 양가 부모와 하객들에게 백년 동안 해로(偕老)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어서 신랑.신부가 세 번의 맞절을 하는 '교배례(交配禮)'가 진행됐다. 신랑.신부가 평등한 존재임을 알리는 의식이다. 주례 절차는 도올이 쓴 글을 하객들이 합창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승중씨와 크리스탱 메누는 90년대 후반 각각 미국 프린스턴대, 하버드대에서 천체물리학을 공부하면서 만났다고 한다. 승중씨의 여동생 미루씨는 "같은 분야를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나 친해진 것 같다"고 귀띔했다. 신랑의 아버지인 크리스티용 메누는 주미 프랑스 대사관에서 재정담당 부대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이처럼 행복한 결혼식을 보게 돼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결혼식에는 평소 도올과 절친한 장사익.조영남.김덕수 등 여러 예술가들이 노래와 춤을 통해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하재식 기자 <angelha@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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