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노트] 김현수는 타격기계가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11일 열린 뉴욕 양키스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메이저리그(MLB) 시범경기.'

볼티모어의 김현수(28)는 1-4로 뒤진 7회 2사 만루에서 유격수 땅볼을 쳤다. 죽을 힘을 다해 1루로 뛰는 김현수의 급한 마음을 두 다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간발의 차로 세이프.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에서 알파고가 연산하고 사람이 착수한 것처럼, 인공지능(AI)이 김현수를 통제했다면 어땠을까. 아직 100%의 몸상태가 아니다→시범경기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평범한 땅볼을 쳤으니 부상이나 충돌을 피하는 게 우선이라는 순서로 판단한 뒤 80% 정도의 힘으로 뛰다 아웃됐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김현수는 저주 같은 연속 무안타에서 벗어나는 게 급했다. 김현수의 첫 안타는 인간적인 고뇌와 절박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김현수는 한국에서 '타격 기계'로 통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정규시즌 경기 97.5%에 출전했고, 경기당 삼진은 0.44개(총 455개)에 불과했다. 기계처럼 공을 잘 맞혔고, 기계처럼 고장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진짜 기계는 아니다. 안타 칠 확률이 30%를 조금 넘는 좋은 타자일 뿐이다.

기계와 달리 인간에게는 웜업(warm up)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 프로야구는 1월 중순 소집돼 2월 평가전을 치르고 3월 시범경기에 들어간다. 김현수는 특히 훈련량이 많은 선수였다. 그런데 MLB는 2월 말에 모여 3월 초 곧바로 시범경기를 치른다. 지난달 미국 플로리다 새러소타에서 만난 김현수는 "타격훈련 몇 번 하고 곧바로 실전에 들어간다는 게 낯설다. 시간을 갖고 적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루틴이 깨지는 것에 대한 걱정을 이미 하고 있었다.

지난 2일 시작한 시범경기에서 김현수는 안타를 치지 못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MLB 투수들을 처음 상대하자 기술적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한국 타자들은 단계별로 시즌을 준비하지만 MLB는 그 기간이 매우 짧다. 이 시기에는 김현수의 눈이 투수들의 빠른 공을 쫓아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김현수가 떨어지는 공에 방망이가 급하게 나오더라. 한국에서도 가끔 슬럼프 기간이 좀 길었다. 그러나 안타가 한번 나오면 김현수는 늘 자기 성적을 냈다"고 설명했다.

기술적 문제는 어느새 심리적 문제가 됐다. 한국에서라면 감독이나 동료, 팬들이 김현수의 시범경기 성적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3월 성적과 관계 없이 김현수는 늘 3할 안팎의 타율, 20개 정도의 홈런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MLB에서는 수많은 눈이 그를 지켜보고 있고, 그에 대한 판단이 매일 이뤄지고 있다. "내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제 막 야구를 시작하는 어린아이 같다"고 했던 말에서 김현수의 인간적인 고민을 느낄 수 있다.

김현수의 첫 안타는 8경기, 25타석 만에 나왔다. 그리고 12일과 14일에도 안타를 때렸다. 타율은 여전히 0.103(29타수 3안타)에 불과하지만 그의 시범경기 전체가 엉망인 건 아니다. 지난 12일 미국 통계사이트 팬그래프는 흥미로운 분석을 소개했다. 동영상으로 확인 가능한 김현수의 스윙 30개 중에서 15개가 파울이었고, 그 가운데 8개가 투스트라이크 이후에 나왔다. 안타를 못 치는 동안에도 볼카운트 싸움을 잘했다는 증거다. 게다가 김현수의 헛스윙률은 10%로 MLB 최상급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시범경기에 앞서 김현수는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공은 모두 공격적으로 때릴 것이다.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는 (콘택트 위주의 스윙으로) 파울을 많이 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의 애초 전략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일부 오류 때문에 마음이 급해지고 스윙이 흔들리는 건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다. 김현수가 노력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다. 기계는 새로운 환경에서 호환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김현수는 적응할 수 있다.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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