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차체 강성 높이고 무게 줄이고’ 고장력 강판이 대체 뭐길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6면

기사 이미지

신차(新車)를 출시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바로 ‘초고장력 강판을 00% 사용했다’는 내용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장력 강판 비율을 밝히는 제조사가 많지 않았다. 심지어 ‘내부 기밀’이라고 입을 닫는 업체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제조사들이 앞다퉈 자사 모델에 적용한 고장력 강판을 강조하고 나선다.

인장 강도 높여 안전성 업그레이드
업체들 발표하는 강판 기준 제각각
만능 강판으로 보기에는 한계 있어

업체들은 고장력 강판을 통해 “차체 강성과 안전성을 높였고, 더불어 무게까지 줄였다”고 자랑한다. 이렇게 감소한 차체 무게는 다시 연비를 높이고 주행성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한다. 대체 초고장력 강판이 뭐 길래 이토록 ‘뜨거운 홍보전’이 펼쳐지는 걸까?

거미줄은 강철보다 20배 질기다고 한다. 하지만 거미줄은 어린 아이의 힘으로도 쉽게 끊을 수 있다. 반면 강철을 손으로 끊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거미줄이 더 질기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동일한 무게, 동일한 두께’ 등 같은 조건을 갖췄을 때 20배 질기기 때문이다.

초고장력 강판의 장점도 이런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일반 철판 100kg을 사용한 자동차와 초고장력 강판 100kg을 사용한 차량이 있다면 후자의 자동차가 월등한 강성을 갖는다.

일반 철판보다 2배 강한 초고장력 강판이라면 무게를 반으로 줄이면서 동일한 강성을 낼 수 있다. 이처럼 초고장력 강판의 비율을 높이면 차체 강성을 높이면서 무게를 줄이는 일이 가능해진다. 남들보다 빼어나고 튼튼한 차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초고장력 강판에 대한 ‘명확한 규격’은 아직 없다. 세계자동차철강협회(World Auto Steel)는 고장력 강판의 경우 ‘HSS(High-Strength Steels)’, 이보다 성능이 좋은 강판(초고장력강)은 ‘AHSS(Advanced High Strength Steel)’라는 이름으로 정의한다고만 공표했다.

현재 세계 최대 철강사인 아르셀로미탈을 포함한 많은 철강사들이 초고장력 강판을 ‘AHSS’로 표기한다. 일부 철강사들은 초고장력 강판에 ‘UHSS(Ultra High Strength Steel)’라고 표기한다. 세계자동차철강협회는 ‘AHSS’의 정의를 인장 강도 60kg/㎟급 이상으로 정의한다. 1㎟ 넓이에서 60kg의 힘을 견디는 강도를 말한다. 또 ‘UHSS’의 경우 80kg/㎟급 이상의 강판으로 규정한다.

일부 제조사는 “새로 출시한 신차의 초고장력 강판 비율이 50%를 넘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너무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업체들이 발표하는 초고장력 강판의 기준도 각각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대·기아차는 초고장력 강판 적용 수준을 ‘AHSS’ 기준인 60kg/㎟ 이상으로 맞춰 발표한다. 반면 도요타는 99.9kg/㎟ 이상의 강판부터 초고장력 강판으로 표기한다. 현대차는 하이브리드 모델인 아이오닉에 53%의 초고장력 강판이 쓰였다고 밝혔다. 반면 도요타는 올해 출시하는 4세대 프리우스에 19% 수준의 초고장력 강판을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수치만으로 보면 아이오닉에 더 많은 초고장력 강판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요타의 경우 인장 강도 99.9kg/㎟ 미만의 것을 초고장력 강판으로 표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다시 말해 도요타가 60kg/㎟ 이상을 초고장력 강판으로 표기할 경우 적용 비율은 크게 올라간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EQ900을 출시했을 때 51%(인장 강도 60kg/㎟ 이상)의 초고장력 강판을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이때 벤츠 S-클래스나 BMW 7시리즈와 같은 세단의 적용 비율은 평균 27%에 불과하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하지만 최근 알루미늄 합금을 비롯해 마그네슘 적용 비율도 늘리는 업체들이 많다. 나아가 탄소섬유까지 사용한다. 때문에 수치로 드러나는 초고장력 강판 비율이 낮아 보이더라도 성능이 떨어진다고 일반화해서 평가하긴 어렵다. 업체들은 더욱 견고하면서 경량화 목표도 달성하고 안전성까지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를 접목해 차를 만들려 하기 때문이다. 또 초고장력 강판 자체가 만능은 아니다. 특성상 가공이 힘들다는 한계도 있다. 사고 발생시 수리비가 올라가 소비자와 보험사의 부담을 키울 수도 있다.

오토뷰=김선웅 기자 startmotor@autoview.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