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외교부장 "사드로 중국 위협, 평화협정 없인 비핵화 없어"

중앙일보

입력

미국을 방문 중인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25일(현지시간) 한ㆍ미가 한반도 배치를 추진 중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에 대해 "사드에 장착된 X-밴드 레이더는 한반도 반경을 훨씬 넘어선다"고 밝혔다.

왕 부장은 이날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사드 배치로 중국의 정당한 국가 이익이 위협받고 위험해 질 수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왕 부장은 “중국의 국가 이익은 보호받아야 하고 중국을 설득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24일 왕 장관과 회동했던 존 케리 국무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비핵화가 되면 사드는 필요없다”며 사드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방어용으로 중국을 겨냥한게 아님을 강조했던 것에 대한 반박이다.

왕 부장은 또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려면 비핵화 협상과 평화협정 병행 논의를 포기해서는 안된다”며 “비핵화 없이는 평화협정이 있을 수 없으며 평화협정 없이 비핵화를 적절한 방법으로 달성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왕 부장은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두 가지 논의를 병행해서 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왕 부장은 “우리는 북한의 핵 개발에 반대하며 한반도 비핵화는 중국 정부의 확고한 목표”라고 덧붙였다.

왕 부장의 발언은 전날 백악관을 찾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 초안을 미국과 합의한 후 나왔다. 이는 미ㆍ중이 역대 최고 강도의 대북 제재에는 합의했지만 중국은 사드 배치 반대와 평화협정 추진을 공언한 것이라 이들 현안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인 만큼 중국이 평화협정 병행 추진을 강행할 경우 향후 북핵 문제를 둘러싼 5자(한국ㆍ미국ㆍ중국ㆍ러시아ㆍ일본) 공조에도 균열을 예고하고 있다. 평화협정을 병행 추진하겠다는 것은 그간 비핵화에 촛점을 맞춰 왔던 6자회담의 성격을 바꾸겠다는 뜻이다. 이는 한ㆍ미가 천명해 온 선(先)비핵화 원칙과 정면 배치된다. 동시에 평화협정 논의는 그 과정에서 비핵화의 전제 조건으로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군 문제와 연결될 수 있어 한ㆍ미동맹의 근간을 건드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왕 부장은 한편 미ㆍ중 관계에 대해 “잘못 다뤄질 경우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수 있다“고 경고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과거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처럼 신흥 대국과 기존 패권국 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치닫는 경우를 뜻한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