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광석 시장의 균형 파괴자…'철의 여인' 라인하트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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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광석 가격이 자유낙하 중이다. 세계 경기침체 때문이다. 그런데도 석유시장과 비슷하게 치킨게임이 한창이다. 가격이 떨어져도 생산량을 줄이지 않거나 오히려 늘려 경쟁업체를 밀어내려는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이미 세계 5위 광산회사인 앵글로가 경쟁에서 나가 떨어져 최근 철광산을 폐쇄했다.

이런 상황에서 판세를 완전히 뒤집겠다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나타났다. 호주 여성 부호인 조지나 라인하트(62) 핸콕프로스펙팅 회장이다. 그가 '철(鐵)의 여인'으로 등극하겠다는 야망을 드러냈다. 최근 철광석 매장지서호주 필바라에서 채굴을 시작했다. 글로벌 빅3(BHP빌리턴·리오틴토·발레)에 도전장을 내민 그의 공격적인 모습이 경쟁 산유국을 고사(枯死))시키겠다며 감산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 알리 알 나이미와 닮았다.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라인하트 회장을 e메일로 인터뷰했다.

세계적으로 철의 수요가 감소했다. 왜 갑자기 생산량을 늘리나.
“갑자기가 아니다. 1992년부터 약 20년간 개발했다. 지난해 12월 첫 선적에 성공했다. 52년 아버지(랭 핸콕)가 필바라 로이힐 광산을 찾아냈다. 당시는 기술력과 자금이 부족해 생산하지 못했을 뿐이다.”

필바라는 호주 철광석의 약 80%가 매장된 곳이다. 핸콕 프로스펙팅은 필바라 지역 500㎢(여의도 면적의 60배)의 채광권을 가지고 있다.

왜 생산까지 20년 넘게 걸렸나.
“매장지 주변에 도로 등 기반시설이 없었다. 광산에서 항구까지 347km를 잇는 철도와 항구 등을 건설해야 했다. 2013년부터 기반시설을 깔기 시작했다. 기반시설이 지난해 말 완공됐다. 로이힐 광산에서 캔 철광석 10만t을 기차로 운반해 헤들랜드 항만에서 첫 선적했다. ”

이는 광산업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개별 광산회사가 자금을 조달해 기반시설을 구축하고 채굴 등에 들어가려면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 그 바람에 철광석이나 석탄 값이 떨어질 때 공급이 증가하는 고질병이 발생한다. 라인하트가 로히힐 개발에 쓴 돈만도 110억 달러(약 13조5500억원)에 이른다. 호주 역사상 최대 광산개발 투자다.

프로젝트 투자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나.
“잠재고객을 주주로 끌어들였다. 한국의 포스코(12.5%), 일본의 마루베니(15%), 대만의 차이나스틸(2.5%) 등이 로히힐 주요 주주다. 이들 파트너는 로히힐에서 캐낼 철광석 50% 정도를 싼값에 제공받는다. 나머지 자금은 한국·미국·일본 수출신용회사 등 모두 19개 은행에서 조달했다. 규모가 72억 달러(약 8조8800억원)에 이른다."
중국 경기둔화로 철광석 수요가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량을 늘린다고 비판이 거세다.
“로이힐이 단 1t의 광석도 수출하지 못했을 때인 2014년부터 그런 전망이 제기됐다. 내년 로이힐의 생산 예상치는 연 5500만t이다. 세계 철강생산량(약 19억t)의 2.9% 수준이다.”

라인하트는 비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로이힐 광산에서 생산하는 양은 절대적 기준으로는 많지 않다. 하지만 요즘같은 상황에선 '낙타 등뼈를 부러뜨린 지푸라기'가 될 수 있다. 그가 철광석 시장의 균형 파괴자로 불리는 이유다. 게다가 전문가들이 그의 등장을 철광석 가격의 장기침체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철광석 값이 형편없는데도 계획대로 갈 것인가.
“시장가격은 오를 때도 있고 내릴 때도 있다. 철광석 값이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우리가 생산할 철광석의 절반 이상을 사겠다는 파트너(포스코·마루베니·차이나스틸)가 있다. 이제 우리는 고품질의 철광석을 낮은 단가에 생산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라인하트의 말은 원가경쟁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생산 단가 낮추기 경쟁은 가격 추락 이후 4~5년 이상 이어졌다. 여기서 승자가 다음 수퍼 사이클(가격 상승)의 과실을 따 먹는다. 스위스 금융그룹 UBS에 따르면 로이힐의 손익분기점은 t당 39달러다. BHP빌리턴(28달러), 리오틴토(30달러), 발레(39달러)에 이은 공동 3위다. 라인하트의 앞길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라인하트는 “로이힐 초창기에는 더 열악했다. 빚도 많았다. 기술자들이 광산 입구의 노천에서 별빛 아래 침낭을 깔고 잤다. 우리는 호황기에 생산능력을 키우며 광산과 철도를 포함한 설비의 현대화에 투자했다. 앞으로도 생산비용을 줄여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임채연 기자 yamfler@joongang.co.kr

*자세한 기사는 포브스 3월호 참조

☞조지나 라인하트=2015년 기준 85억 달러의 재산을 보유, 포브스 선정 세계 94위 억만장자(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110위)에 올랐다. 54년 호주 서부 퍼스에서 태어났다. 시드니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38세 때인 92년 아버지가 세상을 뜨면서 비상장사인 핸콕프로스펙팅을 물려받았다. 호주의 알짜 철광산지 세 곳(로이힐·알파·호프 다운스)의 개발권을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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