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당 68.3초 만에 배송, 이래도 자정 전 집에 못 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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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부산시 동구 CJ대한통운 남부산터미널에서 택배기사들이 상자를 지역별로 분류하고 있다. 기사들은 상자 1개당 배송료로 800원을 받는다. [사진 송봉근 기자]

설 연휴를 사흘 앞둔 3일 오전 7시30분 부산시 좌천동 CJ대한통운 남부산터미널. 80m 길이의 컨베이어벨트 세 곳 앞에는 택배물품을 실어가려는 1t 차량 110여 대로 가득 찼다. “우웅” 소리와 함께 벨트가 움직이자 다양한 크기의 상자들이 줄지어 나온다.

컨베이어벨트 3개서 쉼없이 쏟아져
분류만 평소보다 3~5시간 더 걸려
시간과 싸움, 점심은 김밥으로 때워
CJ대한통운·우체국서만 4900만 개
작년 설보다 30% 늘어 사상 최대

택배기사 김정미(48·여)씨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1분에 40~50개씩 지나가는 택배상자 중 관할인 ‘개금동’이라고 적힌 것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2.8도, 찬 바람에 체감기온은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상황. 패딩 점퍼에 니트·조끼까지 겹겹이 껴입은 김씨는 자신이 배송할 물건을 챙기느라 분주했다. 그는 “평소에는 250개 정도를 배송하는데 오늘은 400여 개를 배달해야 한다”고 했다.

택배기사들은 평소 오전 11시쯤 각자 맡은 배송지를 향해 떠난다. 하지만 이날은 물량이 넘쳐 대부분 오후 2시쯤 떠났다. 부산진구 가야동을 향해 출발하는 택배기사 김경섭(35)씨를 따라나섰다. 이날 김씨에게 할당된 택배는 250여 개.

김씨는 "평소와 물량은 큰 차이가 없지만 좁은 골목길과 주정차가 힘든 곳이 많아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택배기사들은 상자 1개를 배달하면 800원 정도를 챙긴다. 300개를 배송하면 하루에 24만원을 번다. 기름값·식비 등을 제하면 15만원 정도 손에 쥔다. 오전 7시부터 배송 완료 때까지가 근무시간인데 요즘은 오후 8시를 넘기기 일쑤다.

택배차량 조수석에서 지켜본 김씨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운전을 하면서 고객들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핸즈프리로 받는 것은 당연했고, 신호에 걸릴 때마다 송장들을 확인하며 배송지와 연락처를 확인했다. 배송지 도착 20여 분을 앞두고는 고객들에게 모두 전화를 걸어 “가야동 ◆◆◆아파트 ○○○씨 맞으십니까. 곧 도착합니다”라고 알렸다.

터미널에서 출발한 지 10분 만에 첫 배송지에 도착했다. 편도 4차로 인근에 있는 상가였다. 대로변에 잠시 차를 세운 그는 화물칸의 잠금장치를 열고 과일 박스 하나를 꺼내 내달렸다. 그가 돌아올 때까지 걸린 시간은 1분6초에 불과했다.

곧이어 도착한 한 아파트에서 전달할 택배 상자는 총 6개. 차에서 내려 택배 상자를 배달하고 돌아오기까지 6분50초가 걸렸다. 개당 배송시간이 68.3초에 불과한 셈이다.

김씨는 “이렇게 달리지 않으면 오늘 내로 배송을 끝낼 수가 없다”며 “택배기사의 가장 큰 적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올해 설 물량은 사상 최대 수준이다. 우체국택배의 경우 ‘설 연휴 특별수송기간’이 시작된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1일까지(8일간) 접수건수가 868만3000건에 달했다. 지난해 특별수송기간(2월 2~9일) 접수건수 658만6000건에 비해 31.8%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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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역시 올해 배달이 30% 정도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설 수송기간에 3100만여 개를 운송했다. 올해는 4000만 개로 예상한다. 배명순 한국물류협회 사무국장은 “온라인·모바일 구매가 늘면서 택배 물량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쏟아지는 물량 처리를 위해 아르바이트생은 물론 사무직원이 물품 상하차, 분류작업에 동원되기도 한다.

2일 오후 1시 경기도 수원시 탑동 서수원우체국 지하 1층 택배 분류작업장. 김상진(47)씨를 비롯한 택배기사와 우체국 사무직원 등 30~40명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전용 팰릿에 놓인 택배 상자를 동 단위로 분류한 23개 구역으로 나눠 쌓고 있는 것이다.

팰릿은 끝없이 들어왔다. 김씨의 이마에는 금방 땀이 맺혔다. 오전 8시 이전에 마무리됐어야 할 분류작업이 5시간 넘게 지연됐다. 워낙 물량이 많기 때문이다. 이날 서수원우체국 담당 택배만 1만300여 개. 평상시 5000~6000개의 두 배 수준이다.

‘구운동’으로 표시된 곳에 택배가 쌓이자 김씨가 1t 탑차를 대고 상차 작업을 시작했다. 30여 분 후 배달이 시작됐다.

김씨의 구역은 구운동 엠코타운 아파트와 오페라하우스 아파트. 김씨는 택배 상자에 붙은 운송장 바코드에 단말기를 가져다 댔다. 즉시 택배 주인에게 배달예정 문자메시지가 가는 시스템이다.

10여 분 후 첫 배송지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기 무섭게 뒷문을 열고 상자 2개를 들고 뛰었다. 초인종을 누르니 응답이 없다. 단말기를 다시 대자 수취인에게 전화가 연결된다. 단말기에서 경비실에 맡겨 달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김씨는 “점심은 보통 김밥으로 때우고 요즘 같은 때엔 자정 전에 퇴근하기 힘들지만 사랑과 온정을 전달한다는 자부심으로 24년째 택배기사를 하고 있다”며 자리를 떴다.

수원·부산=박수철·차상은 기자 park.sucheol@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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