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내 판단 능력 50대 때와 같아”…신정숙측 "회장님 치매 진행되고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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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3일 성년후견 신청사건 심리에 참석하기 위해 부축을 받으며 서울 가정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휠체어를 타지 않고 걸어서 이동했다. [사진 전민규 기자]

신격호(95)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3일 법정에서 “내 판단능력은 50대 때와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다.

‘후견인 지정 심판’ 첫 심리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과 판단능력은 롯데 경영권 분쟁의 핵심인 만큼, 법원의 판단에 따라 롯데사태가 조기 종료되거나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 총괄회장은 이날 오후 4시 서울 양재동 가정법원에서 열린 ‘성년후견 개시 심판 청구’첫 심리에 참석했다. 검은 에쿠스 차량을 타고 법원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신 총괄회장은 휠체어를 타지 않고 지팡이를 짚고 걸어서 엘리베이터까지 이동했다.

신 총괄회장의 법률 대리인인 김수창 변호사는 “(신 총괄회장은) 재판부가 생년월일을 묻자 정확히 대답했고 본인의 판단력에 대해 말해달라고 하자 구체적으로 자세히 밝히면서 50대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번 재판은 지난해 12월 신 총괄회장의 넷째 여동생인 신정숙(79)씨가 신 총괄회장의 성년후견인을 지정해달라고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성년후견인제는 질병·장애·노령 등에 따른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 처리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법원이 대리권을 행사할 후견인을 지정하는 제도다.

신정숙 씨는 신격호 회장의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89) 여사와 자녀인 신영자(74)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 신유미(33) 롯데호텔 고문 등 5인을 후견인 대상으로 지목했다.

신정숙 씨의 법률 대리인인 이현곤 변호사는 “회장님의 치매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고, 판단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신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회장님이 이날도 법정에 나와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실제 신 총괄회장은 업무보고 자리에서 롯데 계열사 대표들에게 방금 들은 내용을 수차례 다시 묻거나, ‘누구냐’고 묻는 등 단기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는게 롯데측 계열사 대표들의 증언이다.

지난해 10월엔 롯데 후계자를 묻는 취재진에게 “나는 아직 10년, 20년 롯데를 경영할 생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성년 후견인 지정에 찬성하는 신동빈 회장과, 반대하는 신동주 전 부회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후견인 대상자들은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롯데 측은 “대리인을 통해 반대하지 않은 점, 일본홀딩스 주총에서 신동빈 회장의 의결사항이 통과된 점 등을 미루어 모두 반대입장은 아니라고 추정된다”고 말했다.

법원은 분당서울대병원과 연세대세브란스병원의 신 총괄회장 의료기록을 분석하고 병원을 선정해 신 총괄회장의 건강상태를 검사한 뒤 올 상반기 중으로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글=이소아 기자, 강민경·강해령 인턴기자 lsa@joongang.co.kr
사진=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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