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미래] 언어는 어떻게 탄생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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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몸길이 60~70㎝ 정도인 아프리카의 사바나 원숭이는 자신의 무리를 공격하는 것이 누구인가에 따라 다른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다른 사바나 원숭이들은 경고성의 종류에 맞춰 행동한다.

표범이 나타났다는 소리엔 나무 위로 도망치고, 독수리가 공습한다는 경보에는 덤불 속에 숨으며, 소리가 뜻하는 것이 동작이 느린 비단뱀인 경우엔 뒷발로 일어서서 주위를 살핀다. 경고성에 담긴 뜻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가장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혹시 경고성을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보고나서 하는 행동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도 밝혀졌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로버트 세이파스(심리학)교수는 사바나 원숭이가 외치는 경보를 녹음했다가 나중에 다시 틀어주고 반응을 관찰했다. 그랬더니 '독수리다'는 소리엔 덤불로 대피하는 등 늘 똑같은 행동을 보였다. 사바나 원숭이들도 나름대로 정확한 의사 소통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말로 복잡한 뜻을 주고받지는 못한다. 과연 인간은 어떻게 언어를 갖게 됐을까.

이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점점 지능이 높아지면서 자연히 언어가 생겼다는 설(부산물설)이 그 하나다. 또한 사바나 원숭이에게서 보듯 의사 표현을 정황에 맞춰 적절히 하는 집단일수록 생존 확률이 높으므로, 이런 쪽으로 진화하면서 결국 언어가 나타났다는 설(진화설)도 있다.

부산물설을 내세우는 학자는 언어학의 거장인 미국 MIT 노엄 촘스키 교수 등이다. 이들의 주장처럼 지능이 높아진 결과 언어가 자연히 생긴다면, 우선 지능이 왜 발달하게 됐는지 설명해야 한다. 부산물파는 그 이유로 도구의 사용과 더불어 '남을 속이고, 또 남에게 속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을 든다.

무리지어 사는 새들도 동료를 속이는 경우가 있다. 때까치는 먹이를 발견했을 때 '매가 나타났다'는 경고 소리를 지르곤 한다. 동료들이 놀라 달아난 사이 먹이를 독차지하려는 것이다. 때까치의 경고성 중 15% 정도가 거짓말이었다는 연구도 있다.

이렇게 집단의 동료를 속이는 행동은 인간에 가까운 영장류로 갈수록 많아진다. 침팬지는 집단에 서열이 있어 가끔씩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싸우는데, 싸우다가 화해의 제스처로 손을 내밀고는 화답하는 상대방을 느닷없이 공격하기도 한다.

부산물설을 내세우는 과학자들은 먼 옛날 인간의 조상들은 다른 영장류보다 속임수 행동을 훨씬 많이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서로 속이고, 또 속지 않는 전략을 개발하는 가운데 지능이 더욱 발달했고, 결국 언어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약점이 있다. 지능이 극히 낮은데도 언어 능력은 정상인 경우를 설명하지 못한다. 윌리엄스 증후군이라는 병에 걸리면 바로 이렇게 지능이 몹시 떨어지는데도 말을 하고 알아듣는 것은 정상인과 다름 없다.

한편 진화설은 의사 표현이 발달할수록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는 데 근거한 것이다. 앞에 예를 든 사바나 원숭이는 '표범이다'는 것만 알려줄 수 있을 뿐, "표범이 오른쪽 20m 지점에서 접근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표범'이라는 경고에 놀라 오른쪽에 있는 나무로 도망가려던 원숭이는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만일 '표범이 어느 쪽에서 오고 있다'는 식으로 더 자세한 정보를 전하고 알아듣는 능력이 생겨났다면 더 잘 생존하게 된다. 이렇게 상세한 표현을 할 수 있어 살아남은 동물의 집단이 표현 능력을 더욱 발달시킨 결과 인류는 언어를 갖게 됐다는 것이 언어의 진화설이다.

진화설은 부산물설과는 반대로 언어 능력이 발달하는 가운데 지능이 높아졌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의 연구진이 사람의 언어와 관련된 유전자를 찾아내 '진화설'을 뒷받침했다.

영국에 대대로 다른 지능은 정상인데 유독 말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는 집안이 있었는데, 연구진은 이들의 'FOXP2'라는 유전자에 이상이 있음을 알아냈다. 이 유전자는 혀와 성대 등을 절묘하게 조절해 다양한 소리를 내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당시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하며 "계산 결과 약 20만년 전 돌연변이가 일어나 인류의 조상이 이 유전자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0만년 전' 다른 유전자 연구를 통해 추론된, 현재 인류의 직계 조상이 나타난 시기와도 일치한다.

이 시기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존재가 생겼고, 유전자를 통해 이 능력을 대대로 물려주면서 생존 확률이 높은 이 무리가 네안데르탈인 등을 누르고 인류의 조상이 됐다는 것이다.

20만년 동안 인종이 다양해졌음을 생각하면 현재 수많은 언어가 존재하는 것도 무리 없이 설명할 수 있다. 인종보다 언어의 종류가 더 많지만, 사투리에서도 전혀 생소한 단어가 나오는 것을 보면 같은 인종이라도 오래 떨어져 살면서 언어가 달라지는 현상은 얼마든이 가능한 일이다. 이런 점들로 인해 최근에는 진화설이 힘을 얻고 있다.

서울대 과학협동과정 장대익 연구원은 "언어가 태어나려면, 무리의 특정한 구성원이 만들기 시작한 기초적인 문법을 무리 전체가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런 과정은 아직 언어의 진화설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사진설명>

(上) 최근 발견된 16만년 전 인류의 직계 조상 두개골. 이들도 언어를 사용했을까. 연구에 따르면 언어 능력과 관련된 유전자는 20만년쯤 전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下) 과학자에게서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침팬지 칸지. 원래 어미인 마타타를 훈련시켰으나 마타타보다 옆에서 구경하던 칸지가 더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돌고래(上)들에게도 의사소통 능력이 있고, 추상적인 숫자 개념도 이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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