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서명 정치에 “국회 설득 최선 다했나” 비판론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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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1000만 서명운동’과 관련해 “어제(18일) 업무보고를 마치고 오는 길에 거리에서 서명을 했다. 오죽하면 이 엄동설한에 경제인과 국민이 거리로 나섰겠느냐”고 말했다. 왼쪽은 유일호 경제부총리, 오른쪽은 최양희 미래부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1000만 서명운동’에 참여한 것은 그 자체로 정치였다. 이름 붙이자면 ‘서명정치’다. 그리고 이 서명정치는 지난 13일 대국민담화 때 예고됐다.

“오죽하면 엄동설한에 나섰겠냐”
대국민담화 5일 만에 전격 결정
지나친 국회 압박은 삼권분립 위배
오바마는 반대파 백악관 초청 설득

 당시 박 대통령은 국회가 쟁점 법안을 처리해주지 않아 경제에 드리운 그늘을 10분 넘게 설명한 뒤 “위기상황의 돌파구를 찾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바로 국민 여러분”이라고 규정했다. 그러곤 “저도 국민 여러분과 함께 동참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 대 국회’란 입법전쟁의 기존 구도를 ‘국민(+대통령) 대 국회’로 전환해 쟁점 법안 처리를 위한 새 동력을 얻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런 만큼 대국민담화 닷새 만에 국회를 압박하는 국민서명운동에 현직 대통령으론 처음 참여한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자, 머릿속에 있던 ‘프레임(구조) 전환’을 실천에 옮기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19일에도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서명정치에 대한 의미를 강조했다. “어제(18일) 업무보고를 마치고 오는 길에 거리에서 서명을 했다. 오죽하면 이 엄동설한에 경제인과 국민이 거리로 나섰겠느냐. 국민 여러분께서도 함께 뜻을 모아주시기 바란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국민의 이름으로 국회를 꾸짖는 이런 식의 서명정치가 계속될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서명정치를 놓고 “국회를 설득해야 할 대통령이, 그 시간에 국민서명운동에만 참여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대통령은 끝까지 ‘대통령으로서’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며 “그 모습에서 국민이 진정성을 느꼈을 때 선거를 통해 국회를 심판해주는 것이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국회를 압박하는 서명운동을 한다고 국민이 움직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대통령의 지나친 국회 압박은 삼권분립에 배치될 우려도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도 “대통령은 입법부와 끈질기게 협상하고 큰 타협을 이뤄내야 하는 막중한 자리다. 국민서명운동에 참여하기 전까지 박 대통령이 과연 국회 설득을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통령 정무특보 출신인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은 “대통령이 오죽 답답했으면 가두서명을 했겠느냐” 고 말했다.

친박인 유기준 의원도 “대통령이 길거리 구세군함에 개인적으로 월급을 기부한 것과 같다”며 “그렇다고 복지예산 확보와 집행을 위해 대통령으로서 안 뛰는 게 아니지 않느냐. 서명운동에 참여한 게 뭐가 문제냐”고 했다.

서울대 강원택(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미국은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지만 대통령이 ‘가장 큰 정치인’을 자처하는데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대통령이 되면 현실 정치를 외면하거나 무시하며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시리아 정책에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을 삼삼오오 백악관으로 초청해 설득에 나섰다.

미국 대통령 중 ‘위대한 경청자’란 별칭이 있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경우 법안 처리를 위해 야당 의원에게 손 편지를 써 보내곤 했다.

 ◆ “북의 잘못된 행동 확실히 깨닫게 해야”=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관련, “이번에도 강력하고 실효적인 조치들이 도출되지 못한다면 5차, 6차 핵실험을 해도 국제사회가 자신을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북한에 주게 된다”며 “이번에야말로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북한이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궁욱·현일훈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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