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중 러브콜 받는다는 한국 외교의 실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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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여섯 차례 정상회담을 했다. 외국 정상 가운데 가장 많은 횟수다. 지난해 9월 중국 전승절 기념식엔 시 주석과 나란히 천안문 망루에 섰다. 미·중 대결구도 속의 따가운 국제사회 시선은 뒤로했다. 박 대통령이 처음 특사단을 보낸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망설이는 것도 중국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대중 외교에 공을 많이 들인 박근혜 정부의 노력을 중국이 모르진 않을 것이다. 중국은 한·미·일 3각 공조체제에서 약한 고리인 한국을 떼어내 자신들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한·중 관계를 중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전통 우방인 미·일에선 ‘친중 외교’ ‘중국 경사’란 얘기까지 나왔다. 국내에서도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미·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은 축복”이라고 자평했다.

 박근혜 정부의 균형외교 선택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경제적 이유도 그렇지만 북핵 협력에 대한 기대도 크다. 양국 정상회담에 북핵 문제가 오르지 않은 적은 없다. 우리가 중국 역할에 대한 주문을 거른 적도 없다. 중국이 북핵 해결의 만능 열쇠는 아니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 원유 소비량의 90% 안팎, 부족한 식량의 상당량을 공급하는 나라다. 문제는 북핵 반대 입장을 단호하게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절실한 이 시점에 중국에 대한 기대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우선 양국 정상 간엔 전화 통화 기약조차 없다. 지난해 말 국방장관 사이에 핫라인이 열렸지만 개통 일주일도 안 돼 먹통이다. 중국은 아예 전화를 안 받는다. 외교장관 통화는 실망이 크다. 왕이 외교부장이 윤 장관에게 강조한 대화 해결 등의 3원칙은 기존 입장 그대로다. 오히려 이례적으로 결일불가(缺一不可·하나라도 빠져선 안 된다)란 사자성어까지 보도자료에 넣었다. 윤 장관이 했다는 “상응하는 대가” “강력한 결의”는 사라졌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을 언론과 똑같은 시간에 알았다는 군과 정보기관은 국민의 걱정거리다. 4차 핵실험 전 미국의 북한 전문 사이트인 38노스는 풍계리의 새 갱도 굴착을 분석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수소탄을 보도했다. 하지만 국가정보원과 군 정보 당국은 “신빙성이 없다”고 무시했다. 정부는 “북한이 은밀하게 준비 활동을 해서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뒤늦게 해명했다. 이게 외교와 안보에 성과가 크다고 자평하는 보수 정부가 할 얘기인가.

 나라 외교가 지도자 간의 개인적 친분으로 움직이진 않는다. 물론 더 냉정한 시각으로 중국을 봐야 한다. 하지만 한·중 정상 간엔 왜 전화 통화조차 이뤄지지 않는 것일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정부가 부풀려 놓은 기대감의 영향이 크다. 최상의 한·중 관계가 박근혜 정부의 외교 성과라던 게 엊그제다. 정보 실패가 왜 자꾸 반복되는 것인지도 찾아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준비 중인 대국민 담화엔 이런 심각성에 대한 엄정한 판단이 담겨야 한다.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더듬이에 생긴 문제다. 하루빨리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