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메시’는 싫다 … 난 제1의 이승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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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명문구단 FC바르셀로나 복귀를 앞둔 한국 축구의 희망 이승우.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리면서 2016년엔 도약을 다짐했다. [정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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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골잡이 리오넬 메시(왼쪽)와 함께 한 이승우. [이승우 트위터]

2016년 1월6일. 한국축구 차세대 공격수 이승우(18·FC 바르셀로나)가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 만 18세 생일을 맞는 이승우는 지난 3년 동안 발목을 잡았던 ‘공식경기 출전 정지’의 족쇄를 풀고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5일 뒤 팀 경기 출전금지 징계 끝나차세대 축구스타의 새해 각오
3년 간 칼 가는 마음으로 몸 만들어
바르샤 1군 진입은 하늘의 별따기
노력하면 불가능한 일 아니라 믿어
리틀 메시 별명 엄청난 영광이지만
나만의 자유로운 스타일 보여줄 것

 이승우가 스페인 명문 FC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입단한 건 지난 2011년. 이승우는 자신보다 높은 연령대 팀으로 월반(越班)을 거듭하며 ‘제2의 리오넬 메시(29·바르셀로나)’란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2013년 2월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징계를 받으면서 날개가 꺾였다. FIFA는 “바르셀로나가 18세 미만 선수들의 해외 이적을 금지하는 규정을 위반했다”며 이승우 등 외국 출신 바르셀로나 유소년팀 선수들의 공식경기 출전을 금지했다. 지난해 9월부터는 훈련 참가는 물론 클럽하우스에 머물지도 못하도록 했다.

 바르셀로나는 ‘축구천재’ 이승우의 재합류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바르토메우 바르셀로나 회장은 지난달 20일 일본에서 열린 FIFA 클럽 월드컵에 이승우를 초대한 뒤 “내년에는 이 무대에서 뛰어달라”고 말했다. 구단은 이승우의 일거수 일투족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도 제작 중이다.

 이승우는 족쇄가 풀리길 기다리면서 그동안 국내에서 열심히 몸을 만들었다.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구의 한 피트니스센터에서 만난 이승우는 “처음엔 징계 소식을 듣고 농담인줄 알았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칼을 가는 심정으로 몸을 만들며 준비했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냈느냐는 질문에 이승우는 “딴 생각 없다. 훈련만 했다”고 짧게 대답했다. 3일 스페인으로 출국하는 이승우는 올시즌 후베닐A(유소년팀 최상위 단계)와 바르셀로나B(2군)를 오가며 뛸 예정이다.

 이승우는 편견과도 싸우고 있다.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말투와 행동은 일부 네티즌으로부터 ‘건방지다’ ‘당돌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아버지 이영재 씨는 “12세에 스페인에 홀로 건너간 승우는 힘든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스페인으로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 이를 악물고 축구에만 전념했단 사실을 최근에 비로소 알게 됐다.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내로라하는 유망주들이 모인 바르셀로나 훈련장, 아시아에서 건너간 작은 꼬마에겐 좀처럼 패스가 오지 않았다. 이승우는 “선수들이 내게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치노(chino·동양인을 얕잡아 부르는 말)’라고 놀린 아프리카 선수와는 주먹질을 하며 싸운 적도 있다”면서 “2011년 국제대회에서 MVP를 받은 뒤 동료들이 비로소 공을 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승우는 지난해 4월 청소년 대표팀 경기 도중 게임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자 광고판을 걷어차는 돌출 행동을 했다. 이승우는 “누굴 때리거나 매너가 좋지않은 행동으로 퇴장당한 건 아니다. 손흥민(24·토트넘) 선배님도 ‘축구는 90분간 경기장 안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비즈니스’라고 했다. 외국에선 선수가 감독과 싸우기도 한다”면서도 “그래도 이젠 광고판을 차지 않고 쓰다듬어주겠다”고 말했다. ‘승우야! 형이 응원한다’는 플래카드를 내걸 정도로 열렬한 팬들의 응원에 대해선 “우리나라엔 나같은 캐릭터가 없어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당돌한 모습이 사라지면 오히려 재미 없지 않겠느냐”며 해맑게 웃었다.

 키 1m70cm, 몸무게 60kg의 이승우는 축구선수로선 작은 편이다. 하지만 이승우는 “바르셀로나 구단에서는 ‘만약 네 키가 1m80cm나 1m90cm라면 지금 같은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키가 작은 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만 키가 작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끔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체격에 대한 편견이 답답했던지 “메시(키 1m70cm)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체육 선생님을 하고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트레이너 이정우 씨는 “승우가 의도적으로 넘어진 것만 보고 몸싸움에서 밀렸다고 판단하시는 분도 있다. 그러나 승우는 덩치 큰 선수들과 부딪치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근력을 갖췄다”면서 이승우의 탄탄한 복근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스페인 스포츠지 문도 데포르티보는 지난해 이승우를 두고 ‘메시와 가장 닮았다(Lo mas parecido a Messi)’고 극찬했다. 신문은 ‘이승우가 메시처럼 단신이지만 빠른 발과 드리블, 킬러 본능을 두루 갖췄다’고 평가했다.

 이승우를 비롯한 유소년 선수들에겐 바르셀로나 1군 홈경기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승우는 “메시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다. 바르셀로나엔 네이마르(24)와 루이스 수아레스(29)가 있지만 메시야 말로 스타 중의 스타다. ‘제2의 메시’로 불리다니 엄청난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처음에 스페인에 갔을 땐 메시와 함께 뛰는 건 상상조차 못했다. 그러나 이젠 ‘제2의 메시’보단 ‘제1의 이승우’가 되고 싶다”며 “바르셀로나 1군행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 그러나 노력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금부터 나의 자유로운 축구 스타일을 발휘하고 싶다” 고 말했다.

글=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사진=정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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