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핵연료봉 추출 위협하는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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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외교부 고위 당국자가 "북한의 영변 5MWe급 원자로 가동 중지가 확인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또 "미국의 인내심이 많이 소진된 것은 사실이지만 '인내심의 저수지'에 물이 조금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핵 문제가 북.미 간 대치를 점점 심화시키고 있어 우려스럽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더 추출할 수 있다는 위협을 미국에 보낸 것이다. 지난 2월 '핵보유 선언' 성명에 언급했던 '핵무기고 증설'이 허언이 아님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북한이 핵 문제를 둘러싼 기존 대미정책의 기본틀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점이다. 최근 방북했던 미국 연구원을 통해 6자회담에선 북핵 프로그램의 현 수준 동결만 논의하고, 완전 폐기는 북.미 관계 정상화 이후 논의하자는 새로운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겠다는 의도를 보다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북한의 의도가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주변 국가들 중 어느 나라도 이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핵보유 위협의 강도'를 높이면 미국이 양보하지 않겠느냐는 가정은 맞지 않다. "6자회담 이외의 선택은 없다"는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대표 등 미국 고위 당국자들의 충고를 흘려들어선 안 된다.

북한의 원자로 가동 중지로 북핵 문제는 앞으로 몇 달 내에 결정적인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다음 순서는 연료봉을 꺼내 재처리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런 '벼랑 끝 전술'로 나갈 것으로 보이나, 그렇다고 미국은 이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북핵 보유 저지를 위해 협력해야 할 한.미.중.일 간에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는 것이 걱정스럽다. 북한 핵보유는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따라서 다른 어느 국가보다 우리 정부가 비상한 각오로 대처해야 한다. 지금처럼 '북핵 불용'만 외쳐서는 안 되고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모든 수단을 준비할 때가 왔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