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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배 이면합의 의혹 '쌀 협상'최종안 허탈 국정조사로 책임규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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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난 12일 정부는 언론을 통해 2004년 쌀 협상안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의 최종 인증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막상 쌀 재협상 최종안을 공개하고 보니 지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시에도 농산물시장의 파급 효과를 우려해 제외됐던 사과와 배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할 수 있도록 하는 이면합의를 해주고도 이를 숨겨 왔던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됐다.

애초에 이번 쌀 재협상은 쌀 이외의 품목에 대해서는 협상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쌀 말고도 중국과는 사과.배, 캐나다와는 사료용 완두콩과 유채유의 관세 인하, 아르헨티나와는 닭고기와 오렌지의 수출이 쉽게 되도록 하는 이면합의를 했다.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쌀 이외의 품목은 이번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면서 쌀 시장을 막기 위해 별도 이면합의는 하지 않겠다고 말해 왔다. 사태가 이쯤 되면 정부는 마땅히 사과와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회는 보다 정확한 상황 파악과 책임규명을 위해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밝혀진 것 이외의 추가적인 이면합의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면합의가 있다는 내용이 밝혀지기 전에도 이번 쌀 재협상은 최악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쌀에 대한 의무수입량을 대폭으로 늘리고 시중 판매를 허용함으로써 수입산 쌀이 국민의 식탁에 직접 오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WTO 제6차 각료회의가 올해 말에 예정대로 열리고 농업에 대한 협상이 최종적으로 타결되면 우리나라는 더 큰 폭으로 국내 농산물 시장을 열어야 하고, 국내 농업을 위해 쓰고 있는 보조금을 더 많이 감축해야 한다. 더구나 정부는 일본.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유럽연합(EU) 등 많은 국가와 추가로 FTA를 추진하고 있다. 더 싼값에 농산물을 사다 먹고 보다 자유롭게 공산품을 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농업과 관련해 분명히 기억할 사실이 있다. 먼저 농산물은 무조건 돈만 주면 값싸게 사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식량이 남아돈다고 농토를 마구 훼손하면 식량이 부족해 식량을 생산하려 해도 공장에서 공산품을 생산하듯 농산물을 곧바로 생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세계는 이미 식량부족 시대에 접어들었고 식량무기화의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 늦기 전에 농업보호에 대한 목표와 계획을 수립하고 농업시장 개방에 대응해야 한다. 한번 개발된 농토는 다시 회복하는 데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강민수 전국농민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