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일 양국은 이제 앞을 보고 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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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일 관계의 최대 현안인 위안부 문제가 28일 외교장관회담에서 타결됐다. 광복 70주년이자 한일협정 체결 50주년인 올해를 넘기지 않고 양국 간의 해묵은 난제가 처리돼 다행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국민정서의 벽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이다.

위안부 회담, 진일보했지만 국민 납득 시켜야
일 정부 책임 인정, 총리 자격 사죄 등은 성과
소녀상 이전, 최종적 해결 선언 등은 논란 여지
일본 측의 진정성 있는 태도 여부에 달려 있어

 이번 회담 결과는 사과 수준이나 표현 방식 등으로 볼 때 내용상으로 진일보했음을 느끼게 한다. 비록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법적 책임까지 인정하진 않았지만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은 “군의 관여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발표했다.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가 일본 정부의 책임임이 공식 인정된 셈이다.

 사죄 관련 부분에서도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 내각총리대신으로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적시했다. 사과가 아베 개인이 아닌 총리 자격으로 이뤄짐을 강조한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역대 어느 정권보다 한 발짝 나아간 사과가 아닐 수 없다. 그 점에서 아베 총리의 결단은 평가할 만하다. 만일 아베 총리가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이런 사과를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보상금이 일본 정부 예산에서 나온다는 사실도 상징적이다. 간접적으로나마 일본 정부 책임을 인정하는 셈인 까닭이다. 피해자 할머니 측이 요구하던 내용이기도 하다. 기시다 외무상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듯 전체 보상액도 일본 측에서 당초 거론됐던 1억 엔보다 훨씬 많은 10억 엔으로 결정됐다.

 다만 우려되는 건 우리가 일본 측에 약속한 세 가지 사안에 대한 국민적 반응이다.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선언, 위안부 소녀상 이전, 국제사회에서의 상호 비난·비판 자제는 휘발성 높은 사안들이다.

 우선 이번 회담으로 이 문제가 완전히 끝났다고 선언하더라도 위안부 할머니 개인이나 시민단체가 불복해 국내뿐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 법적 소송 등을 제기하면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리 국가라도 이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녀상 이전 문제도 그렇다. 우리 당국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 이전에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소녀상을 설치한 주체는 국가가 아닌 시민단체다.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다. 외교부 측도 회담 직전까지 우리 소관이 아니라고 소녀상 이전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으며 일본 언론이 이 같은 방침을 보도하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한 바 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일본 언론 보도가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사회에서의 상호 비난·비판 건도 마찬가지다. 한·일 양국은 물론 세계 무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앞으로 위안부 문제는 절대 거론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우리 팔다리를 묶는 격이다. 이처럼 반발이 적잖을 합의 사안을 체결한 당국으로서는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포함, 온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난제를 떠안게 됐다.

 이번 합의가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것은 일본 측의 태도에 전적으로 달렸다. 말로는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해놓고선 위안부 강제 동원을 계속 부인하면 이번 합의는 휴지조각이 된다. 일본 측의 ‘진정성’이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 해결의 핵심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협상 상대가 있는 외교에서는 본질적으로 완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일본의 법적 책임 불인정 등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적잖은 수확이 있기에 양국의 노력은 인정해줄 만하다. 일본 내 친한 인사들조차 일본의 어느 정권이라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못할 거라고 단언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비록 직접적인 표현이 사용되지 않더라도 법적 책임을 지는 것과 동일한 수준의 유감 표명과 보상 등의 실익을 보장받는 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 면에서 이번 타결 내용은 실질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양보를 끌어냈다는 외교부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시비가 한·일 관계의 발목을 잡아왔지만 일본은 결코 절연하고 살 수는 없는 이웃나라다. 핵으로 무장된 북한을 함께 마주하는 상황에서 한·미·일 삼각동맹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우리의 우방이다. 친구는 선택할 수 있지만 이웃은 고를 수 없는 법이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한·일 양국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