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다 끝낸다” 너무 나가는 일본…협상 실패 땐 한국 탓 돌리려는 술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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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 타결을 위한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앞두고 일본 정부가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밀하게 움직였다. 일본은 회담 일정과 협상 내용을 선점해 한국이 등 떠밀려 협상하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했다.

외교회담 일정·협상 내용도 흘려
“미국에 최선 다하는 메시지 노려”

 먼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상이 전격 방한하는 만큼 양국이 공동 발표하는 게 상식이지만 회담 일정은 일본 언론 보도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는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일본 외무성 등에 강력히 항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일 외교 전문가는 “일본이 기시다 외상의 방한 소식을 미리 흘린 건 한·일 관계 정상화를 압박하는 미국에 막판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라며 “한국 정부로서는 논의 자체를 없던 일로 되돌릴 경우 회담을 거부한 것처럼 비쳐질 수 있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의 일방통행식 협상은 자칫 타결 이후에도 많은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하나는 협상 내용이다. 대표적인 예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새로운 기금을 만들어 아시아여성기금의 후속 사업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일본은 자국뿐 아니라 한국 정부가 공동으로 자금을 출연해 위안부 피해자 지원 기금을 설립하는 방안을 한국 측에 공식 제안할 예정이다. 산케이(産經)신문은 27일 “한국 측이 일본에 20억 엔(약 194억원)의 출연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의 요구액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했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도 “일본이 1억 엔(약 9억7000만원)가량을 검토하고 있는데 한국 측이 총액 10억 엔 이상을 요구하고 있어 조정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기금 조성에 한국을 끌어들임으로써 더 이상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담보하려는 뜻도 들어 있다. 일본이 미국의 입회하에 최종 합의 문서를 교환하려는 구상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외교 소식통은 “일본 정부가 국내 부담을 최소화하고 자기 페이스대로 협상을 진행하기 위한 전술 같다”고 평가했다.

 일본 총리 관저 주변에선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다 끝낼 수 있다. 양국이 협상안을 주고받는 단계는 모두 끝났다. 일본으로선 이번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 합의라는 점을 못 박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도 자칫 협상이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을 한국 측에 떠넘기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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