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또 결렬된 선거구 조정, 국회의장이 결단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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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회의원 선거구와 쟁점 법안을 둘러싼 여야 협상이 어제 또 결렬됐다. 헌재가 현행 선거구를 위헌으로 규정하고 인구편차 2대 1로 조정하도록 정한 시한은 연말까지다. 따라서 연내에 개정되지 않으면 현행 선거구는 효력을 잃게 된다. 국회는 선거구를 기반으로 존재하므로 이는 ‘입법부 비상사태’에 해당될 수 있다. 법안도 비슷하다. 서비스산업발전지원법과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원샷법’, 노동개혁법안, 테러방지법 등은 대통령이 시급한 필요성을 호소하는 것들이다.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고 해서 국가 비상사태라고는 할 수 없지만 경제 상황을 볼 때 그 폐해는 작지 않을 것이다.

 선거구의 경우 여야는 지역구를 7개 늘리고 비례대표를 7개 줄이는 데는 의견을 접근시켰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비례대표 배분 방식을 바꿀 것을 주장해 합의를 보지 못해왔다. 야당은 투표연령 하한을 19세에서 18세로 낮추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당초 헌재가 제기한 문제는 지역구 조정인데 막판에 다른 문제까지 얽히게 된 것이다.

많은 지역에서 선거구가 확정되지 못해 출마자들은 애로를 겪고 있다. 특히 적잖은 정치 신인이 홍보물에 희망 선거구를 명시하지 못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기득권자인 현역 의원들의 업무태만으로 일반 국민의 참정권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보통 일이 아니다.

 국회의장은 합리적인 선거제도를 통해 필요한 인재가 입법부에 충원되도록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여야가 합의를 보지 못할 경우 ‘입법부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국회법에는 의장이 법안을 직권상정 할 수 있는 네 가지 조건이 명시돼 있다. 여야가 법 개정에 실패해 내년부터 선거구가 없어지면 이는 네 가지 중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된다.

 정 의장은 합리적인 선거구 조정안을 마련해 직권상정 절차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이미 선관위 산하 선거구획정위에는 검토가 끝난 조정안이 여러 개 있다. 의장은 획정위와 협력해 안을 고르고 이를 본회의 표결에 부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