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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응팔’ 그리고 노스탤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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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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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논설위원

요즘 미국과 한국에서 ‘스타워즈:깨어난 포스’와 ‘응답하라 1988’(응팔)이 선풍적 인기다. 하나는 공상과학영화, 또 하나는 코믹드라마지만 옛 향수가 판매 전략이란 점에선 닮은꼴이다.

 지난 17일 전 세계에서 개봉한 스타워즈는 특히 미국에서 인기가 높아 최고 흥행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다. 극장 부근 교통 마비는 물론이고 남미에서 비행기로 오는 관객도 적지 않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스타워즈를 봐야 한다”며 서둘러 기자회견을 마칠 정도다. 응팔도 만만치 않다. 시청률에서 주말 저녁 지상파 프로 모두를 따돌렸다.

 이런 열기는 작품의 완성도 때문만이 아니다. 관객들에게 향수, 즉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 덕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누구든 좋았던 옛 시절은 있기 마련이라 향수 어린 작품을 보면 행복했던 때로 순간이동한다는 거다.

 그리하여 스타워즈 제작자는 옛 영화에 열광했던 팬들을 위해 곳곳에 과거 명장면을 끼워 넣었다. 두 개의 태양이 지는 광경이나 R-2 로봇의 익숙한 말투 모두 향수 작동용 장치다. 응팔은 아예 소품 하나하나가 그런 각도에서 골라졌다.

 주목할 건 향수가 인간에게 여러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향수에 젖으면 동료와의 유대감이 커지면서 협력이 잘 이뤄진다고 한다. 실제로 영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사우샘프턴대 제이컵 율 교수는 피실험자들을 두 편으로 나눈 뒤 한쪽에는 과거에 즐거웠던 순간을, 다른 쪽에는 특정 시점의 일반적 사건을 기억하게 했다. 한쪽만 향수에 젖게 한 셈이다. 이후 협력이 절실한 일을 양쪽에 시켰더니 앞쪽 성과가 월등했다. 향수에 젖으면 더 협조적이 된다는 증거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향수가 현재의 어려움을 견디는 힘과 삶에 대한 용기를 크게 북돋는 걸로 나왔다.

 웃기고도 슬픈 건 향수가 착각의 소산이란 거다. 인간의 뇌는 기쁜 추억보다 슬픈 기억을 빨리 잊는다. 자연히 과거를 더 아름답게 회상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단체 관광객들에게 시차를 두고 “여행이 어땠느냐”고 반복해 물었더니 갈수록 “좋았다”는 답이 늘었다. 즐거움만 오래 기억하려는 뇌의 속성 탓이다. 슬픈 일을 쉽게 잊지 못하면 힘든 삶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팍팍한 세상이다. 이럴 땐 향수에 젖게 할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도 세파를 이겨나갈 지혜 아닐까. 단 뇌의 장난 탓에 옛 연인은 실제보다 미화된다는 건 잊지 마시길.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