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통령 = 피해자, 국회 = 가해자…파괴력 강한 박 대통령 ‘고립 화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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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박근혜 대통령의 화법은 독특하다. “참 나쁜 대통령”(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 때),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2008년 총선 친박계 공천 탈락 사태 때) 같은 발언들이 대표적이다. 군더더기가 없고 설득력이 강하다. 단문이지만 그 속에는 나름의 논리구조가 있다. 박 대통령 자신과 대다수 국민(또는 당원)을 하나의 공감대로 묶고, 상대방은 정치적 가해자 또는 세력으로 지목함으로써 고립시키는 식이다. 그런 만큼 효과가 극대화된다. 2007년엔 “지금이 정치놀음이나 할 때냐”란 여론을 키워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지지율을 뚝 떨어뜨렸고, 2008년엔 ‘친이계의 공천 전횡이 심하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무소속으로 출마한 친박계 인사들의 대거 생환을 도왔다.

호의적인 여론 키워 상대방 압박
“비판이 능사 아니다” 일부 지적

 박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이런 화법을 쓰고 있다. 대상은 달라졌다. 주로 국회를 상대로 해서다.

 취임 일주일 만이었던 2013년 3월 4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회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정부조직법 통과를 미루는 국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 지난해 세월호특별법 때문에 국회가 공전하자 “국민에 대한 의무를 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국회의원들은) 국민에게 세비를 돌려드려야 한다”고 무노동 무임금론도 폈다. 이런 국회 압박의 결정판이 16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쟁점 법안 처리를 촉구하면서 한 “정치개혁은 말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란 국회 비판이다. 이 자리에선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山)이로다”란 시조도 인용했다. 종합하면 ‘국회는 국민을 위해 일하거나 노력하지 않는 집단’이란 뜻이 된다.

 하지만 ‘대통령·국민=피해자, 국회=가해자’라는 이분법적 발언 공세가 부적절하단 목소리도 크다. 일단 과도한 국회 비판이 삼권 분립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손상호 선임연구위원은 “대통령의 국회 비판에도 당연히 일리는 있지만 순화된 표현으로도 충분히 입장을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야당 지도자 때와는 달리 비판이 능사가 아니란 쓴소리도 나온다.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이란 비판도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지적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법이 필요하다면 국회를 품고 잘 보듬어야 할 책임도 있다”며 “하지만 지금은 정치와 거리를 두면서 비판만 하다 보니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발언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있다”고 했다.

  남궁욱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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