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방 빼라” “취임식 안 간다” … 얼굴 붉힌 아르헨 신·구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기사 이미지

페르난데스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9일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퇴임 연설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기사 이미지

마우리시오 마크리

지난달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승리한 마우리시오 마크리(56·사진)가 10일(현지시간) 대통령에 공식 취임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에는 지난 12년간 이어진 좌파 정권에 종지부를 찍고 친(親)시장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새 정부가 출범했다.

마크리가 이끄는 ‘기업인 내각’ 출범

 마크리 신임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포퓰리즘으로 파탄 위기에 처한 경제를 회복시키는 일이다. 아르헨티나의 올해 경제 성장률은 0.4%, 물가상승률은 30%까지 치솟았다. 친기업주의자로 불리는 마크리 대통령은 보호무역 정책을 대거 폐기하고 외환 거래 자유화, 농산물 수출품에 대한 과도한 세금을 줄이는 등 국가 경제를 되살리는 개혁 작업에 본격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새 내각을 구성하는 25명 장관 중 9명은 기업인, 금융인 출신이다. ‘기업인 내각(Corporate cabinet)’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경제 장관에는 투자은행 JP모건 출신인 알폰소 프래트 게이, 에너지 장관에는 석유회사 쉘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후안 호세 아라구렌을 임명했다.

 12년간의 ‘좌파 부부 대통령 시대’를 끝마치게 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53) 전임 대통령은 취임식에 불참하며 마크리 신임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신구(新舊)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 취임식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어왔다. 마크리 당선인은 “취임 선서는 국회에서 하더라도 카사로사다 대통령궁에서 전임 대통령에게 직접 지휘봉을 받고싶다”고 했지만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모든 취임식 절차를 국회에서 해결하라”고 맞섰다. 결국 마크리는 페르난데스가 취임식에 관여하지 못하게 “페르난데스의 공식적인 임기가 9일 자정에 끝나게 해달라”는 소를 연방법원에 제기했고, 법원은 마크리의 손을 들어줬다.

취임식이 열린 10일 정오까지 12시간은 상원의장이 대통령 직무대행을 맡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화가 난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취임식 불참을 선언했다. 전날 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통령궁에서 퇴임 연설을 한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자정 이후 나는 ‘호박’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많은 얘기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데렐라가 파티에 갈 때 탔던 호박마차가 자정 후 마법이 풀려 다시 호박이 된 것에 비유한 농담이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