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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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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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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런던특파원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왜 날 사랑한다고 단 한 번도 말해주지 않나요.” 남편이 답했다. “25년 전 결혼하기 직전에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했잖소. 내 입장에 변화가 생기면 말해줄게요.”

 한 농부가 5㎞ 떨어진 이웃 농부네에 갔다. 둘이 말없이 20분간 차를 마셨다. “한 잔 더 하겠나.” “그러지.” 다시 20분이 흘렀다. 주인장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인 일인가.” “우리 집에 불이 났다네.”

 핀란드인의 성품을 소재로 삼은 유머다. 신중하고 말수가 적은 대신 단도직입적이라고 한다. 한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고 해가 떠 있는 시간이 채 하루 6시간이 안 되니 우물쭈물하고 있을 틈이 없긴 할 게다.

 ?미래는 핀란드에 있다-국가경쟁력 1위의 비밀?의 일부다. 노키아의 몰락으로 고전 중인 요즘 상황에선 영 어색한 제목이다. 하지만 2008년 발간 무렵만 해도 다들 미래가 핀란드에 있는 줄 알긴 했다.

 원제는 좀 다른데 ?핀란드, 문화적 외로운 늑대(Finland, Cultural Lone Wolf)?다. 요즘 맥락의 ‘외로운 늑대’가 아니다. 500년간 스웨덴의 속주였고 100년간 러시아의 대공국이었으며 유럽인으로 여겨지나 다른 인종이자 어족(피노우그리안)이란 의미다. 한마디로 독특하단 얘기다.

 이들이 절대 피하는 게 있으니 남들의 시선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핀란드의 사회보험청(KELA)이 “전 국민에게 월 800유로(약 100만원)의 기본 소득을 주는 정책을 성안(成案) 중”이라고 해서다. 국가가 생계를 책임진다고 뭉클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전제가 있다. 교육·의료 정도를 뺀 나머지 복지는 모두 없애겠다는 것이다. 핀란드 총리는 “복지시스템을 단순화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막상 주판알을 튕기면 일부 어려운 계층이 손해 볼 수도 있다. KELA는 10% 안팎의 실업률을 낮추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여긴다. 실업급여보다 낮은 임금으론 일을 안 하려는 심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봐서다.

 사실 기본소득은 수백 년간 경제학계를 떠도는 아이디어다. 실현 가능하다는 걸 이론적으로 입증한 경제학자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란 의심을 국가 차원에서 넘어선 곳은 없었다.

 이젠 핀란드가 나섰다. 통상적 방식으로 풀 수 없는 위기란 절박감이자 그에 따른 용기일 게다. 앞으로의 과정도 결과도 궁금하다. 어찌 보면 여전히 미래는 핀란드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정애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