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노벨평화상에 상처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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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26일 아침 일본 신문들을 펼쳐드니 '盧씨는 불신의 싹을 뽑아내야'(아사히신문), '노벨평화상에 상처가 났다'(요미우리 신문) 등의 사설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역사적 남북회담에 상처'(니혼게이자이신문), '북조선(북한) 부정 송금사건' 등의 기사제목도 보였다.

대북송금을 수사했던 특별검사팀의 발표를 전하는 일본 언론들의 요지는 간단하다. "한국 정부가 햇볕정책을 한다면서 독재 국가에 불법으로 거액을 송금했다. 그러나 북한은 약속을 지킨 것이 없다. 오히려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잘못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즉 한국이 햇볕정책을 한답시고 부정한 돈을 갖다준 결과 북한의 군사력만 강해졌고, 다른 국가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요미우리는 한술 더 떠 사설 첫마디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돈으로 샀다고 비난받아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한 후 '정치 부패' '정.재계 유착'등을 써가며 비아냥거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도가 추락했다는 데 있다. 일본 언론들은 특히 盧대통령이 특검 연장을 거부했다는 점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요미우리는 "盧정권은 햇볕정책을 계승해 대화중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일본.미국 내에선 (이런 상황에서) 盧정권과 공동보조를 취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나온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사히는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안감이 증폭됐다"며 "한.미.일 협조 체제를 위해서도 盧대통령은 이번 사건의 의혹을 확실히 밝혀내 불신의 싹을 잘라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제 사회는 냉정하다. 아사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부정 송금이) 같은 민족의 화해를 위해선 필요악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미국.일본에는 (그런 논리가)통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검의 이번 발표는 북한 핵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해온 한국 정부의 입지만 더욱 힘들게 할 것같다.

오대영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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