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닭고기 조각이 어느새 노릇노릇해지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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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호 28면

여러 종류의 꼬치구이.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구워져 나왔을 때 최대한 따뜻한 상태에서 바로 먹는 것이다. 꼬치에서 빼서 먹는 것보다 그냥 놔둔 채 입으로 한 조각씩 빼 먹는 것이 더 맛있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낙엽 냄새가 문득 느껴진다 싶으면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꼬치구이다. 따뜻한 불, 지글거리며 익어가는 꼬치, 그리고 그 구수한 냄새의 유혹은 참 치명적이다. 생각만으로도 절로 침이 넘어간다.


꼬치구이는 원초적인 음식이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음식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인류가 불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150만년 전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직립원인) 시절부터다. 그때부터 고기를 익혀 먹기 시작했다. 사냥한 고기를 먹기 쉽게 자른 다음 잘 구워질 수 있도록 무언가에 꿰어 구워 먹었을 것이다. 바로 꼬치구이의 시작이다. 이렇게 인류의 뿌리와 맞닿아 있는 음식이니만큼 우리가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만드는 방법만 놓고 보면 꼬치구이는 요리라고 할 것도 없다. 아주 단순하다. 재료를 꼬치에 꿰어서 불에 구우면 그만이다. 하지만 맛있는 꼬치구이를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무엇보다 재료가 싱싱하고 좋아야 한다. 별다른 변형 과정 없이 재료가 바로 음식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이 중요하다. 재료 원래의 맛과 식감을 유지하면서 익히려면 고온에서 짧은 시간 내에 구워내는 불조절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굽는 기술과 정성이다. 이렇게 세 박자가 고루 잘 맞아야 누가 먹어도 만족할 만한 수준 높은 꼬치구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와라쿠: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25-16 전화 02-517-2292 저녁 6시부터 영업한다. 휴일은 따로 없다. 각종 꼬치구이 4500~6000원(1~2개 기준). 추천 메뉴 네기마(다릿살과 대파구이), 모모니쿠(다릿살 구이), 데바사키(닭 날개 구이, 꼭 하나를 더 시키게 만드는 최고의 맛)

신사동 가로수길 근처에 있는 ‘와라쿠(和樂)’는 이 세 박자를 잘 갖춘 곳이다. 한 번 가보고 그 맛에 반해 단골이 되었다. 흔히 ‘야끼도리(燒鳥)집’이라 불리는 일본식 꼬치구이 식당이다. 남윤재(50) 대표가 2008년 개업해서 운영하고 있다.


남 대표는 특이하게도 대형 건물 설계를 하고 있는 건축사다.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꼬치구이 맛을 들였던 것이 계기가 되어 결국 본인이 직접 차리게 됐다. 원래 음식에 관심이 많아 음식점 디자인과 설계를 해 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메뉴에 대해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곤 했었는데, 그런 곳들이 잘 되어 가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 일단 도쿄의 유명 꼬치구이집을 찾아가서 수업료를 내고 노하우와 시스템을 전수 받았다.


좋은 건축을 하려면 완성도가 중요하다. 꼬치구이도 그렇게 완성도를 높여 맛있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신선한 냉장 닭 재료를 확보하는 것이다. 치킨의 경우 시장이 커서 냉동하지 않은 닭을 공급하는 물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만 꼬치구이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꼬치구이는 닭을 부분육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시장 크기가 작아서 그렇게 냉장 공급하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 대부분의 꼬치구이집은 냉동한 닭고기 재료를 쓰고 있었다. 6개월 동안 찾아 다닌 끝에 하루 전에 잡은 닭을 신선하게 냉장 공급해줄 수 있는 공급처를 확보하고 나서야 식당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숯 중에서 가장 화력이 좋다는 ‘비장탄(備長炭)’을 사용한다. 조직이 치밀한 활엽수를 이용해 완전 연소시켜 만든 단단한 백탄이다. 보통 참숯의 화력이 600~800도 정도인데 비해 비장탄은 1000도 가까이 올라가기 때문에 재료를 더 빠른 시간 내에 익힐 수 있다. 완전 연소가 되어 유황 성분이 없기 때문에 구울 때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고 깔끔한 것도 특징이다.


꼬치를 굽는 것은 최소한 6개월 이상 교육을 받은 직원이 담당한다. 비장탄은 화력이 세기 때문에 더욱 세심한 기술이 필요하다. 뜨거운 불 앞에서 숯에 연신 부채질을 해가면서 정성스럽게 꼬치를 하나씩 구워내는 것을 보면 감탄스럽기도 하고 꼬치가 더욱 맛있어 보인다.


이렇게 세 박자를 잘 지켜 구워주는 이곳의 꼬치구이 맛은 한마디로 일품이다.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꼬치는 그 냄새부터가 식욕을 한껏 자극한다. 막 구워낸 따뜻한 닭꼬치를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에 감칠 맛이 하나 가득 들어찬다. 기분 좋은 숯 향은 코를 위한 보너스다. 냉동한 싸구려 꼬치구이와는 차원이 다른 고급스러운 맛이다.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가장 맛있는 꼬치구이는 고등학교 시절 학원 수업을 빼 먹고 친구와 몰래 포장마차에서 먹곤 하던 것이다. 그 맛과 냄새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스릴 있게 목에 넘겼던 차가운 소주 한잔의 날카로운 느낌과 함께. 그 다음으로 ‘와라쿠’가 가장 맛있다. ●


주영욱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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