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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에서 삼성전자가 나오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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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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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
뉴욕특파원

한국 경제가 결국 2%대 성장에 머물 것이란 전망은 우울하기만 하다.

 성장 부진 그 자체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5년 연속 세계 평균치에 못 미친다는 사실이다. 한국 경제의 어려움이 외부 환경보다 내부 문제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한국 금융이다.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평까지 듣는 한국 금융의 경쟁력을 확 끌어올리지 않고선 경제강국 진입은 요원하다.

 금융계 종사자들은 ‘당국의 규제’를 주된 이유로 꼽는다. 규제가 금융 회사들의 손발을 묶어놓고 있다는 호소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한국 경제의 위상과 한국 금융의 경쟁력이 따로 노는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각국 은행이 벌이는 서비스 경쟁이 그 실마리를 제공할지 모른다. 우선 영업시간이다. 미국에선 토요일도 은행이 문을 연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곳이 있다. 토론토 도미니온(TD)뱅크다. 캐나다계 은행인 이곳은 일요일은 물론 일부 국경일에도 문을 연다. 근무시간도 길다. 맨해튼 지점에선 평일 오전 7시30분에 문을 열어 오후 7시에 문을 닫는다. 그러면서 어떤 은행보다 오래 고객을 맞는다는 점을 차별화 포인트로 삼는다.

 고객이 카드 도난이나 해킹을 당했을 때 은행의 대응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간 것을 확인하고 신고하면 은행에선 일단 인출된 돈을 넣어준다. 신고가 사실인지 여부에 대한 조사는 그 다음이다. 고객을 그만큼 신뢰한다는 표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고객 편의를 중시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규정을 앞세워 고객을 차갑게만 대하는 것도 아니다. 동포 A씨는 최근 미국계 C은행 계좌 잔액이 1달러 부족해 35달러의 벌금성 수수료가 부과됐다. 뒤늦게 정황을 안 A씨는 은행 창구를 찾아가 사정을 호소하고 그 자리에서 수수료를 면제받았다. A씨가 C은행을 한층 선호하게 됐음은 물론이다.

 온라인 뱅킹의 보안 시스템도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 새로운 바이러스 출현에 보안을 강화하는 것은 은행 책임이다. 고객은 매번 직접 새로운 보안시스템을 깔아야 하는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된다.

 국내 은행도 저마다 뉴욕에 진출해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서비스 경쟁을 주도하지 못한다. 관계자들은 “자본도 지점수도 적다”며 “공격적인 영업에는 한계가 있다”고 호소한다. 게다가 해외 지점은 큰 사고만 치지 말고 적자만 면하면 된다는 인식도 한몫한다. 본점 분위기도 비슷하다. 감독 당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세계 정보기술(IT) 시장을 주름잡는 삼성이나 LG도 베스트바이 진열대 구석에 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시절이 있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신제품을 개발하고 현지 마케팅을 강화해 시장을 뚫었다. 제조업의 성공 모델을 그대로 금융업에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겠지만 금융이라고 못할 일도 아니다. 금융 종사자들을 옥죄는 규제는 혁파돼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금융계의 패배주의와 소극성도 극복돼야 한다.

이상렬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