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빌 게이츠, 버락 오바마 키운 건 외할머니의 ‘무릎 교육’ 이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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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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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스승이다
윤용섭 외 지음
글항아리, 316쪽
1만8000원

“아버지와 아들은 세(勢)가 통하지 않기에 올바름을 가르칠 때 통하지 않으면 화를 내고 결국에는 서로 해치게 된다.” 그 옛날 맹자의 말씀이다. 요즘의 어버이들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대목이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자녀를 다그치다 스스로 분을 이기지 못하기도 한다. 반면 조부모는 좀 다르다. 이미 한 차례 부모 노릇을 해본 데다 부모와 달리 한결 너그럽게 타이르는 여유를 발휘할 수 있다. 격대(隔代)교육, 즉 한 세대를 건너 조부모의 교육적 역할이 새로운 주목을 받는 배경이다.

 이는 대가족·다자녀가 일반적이던 시절에는 보편적 전통이었다. 특히 할머니는 어머니를 대신해 어린 아이에게 생활습관을 익히게 하고, 동요·놀이·옛날이야기를 전수하는 등 다면적 역할을 해내곤 했다. 이를 일컫는 ‘무릎학교’라는 말도 있다. 배탈난 아이를 뉘어 놓고 “할미 손은 약손”이라며 심리적·물리적 치료를 겸하는 것 역시 할머니의 몫이었다.

부모 자식 간의 법도가 제법 지엄했던 양반가에서도 조부모와의 관계는 한결 부드러웠다. 『예기』에는 “군자라면 손자는 안아도 아들은 안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다. 퇴계 이황은 맏손자에게 지금 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 누구와 공부해야 할지 시시콜콜 이르는 편지를 153통이나 남겼다. 조선 중기 사대부 이문건은 손자의 출생부터 16세까지의 성장과정을 일기로 기록한 『양아록』을 쓰기도 했다.

 이 책은 이처럼 우리네 전통은 물론이고 서양의 사례까지 거론하며 격대교육의 중요성을 살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어려서부터 온갖 책을 즐겨 읽게 만든 것도, 아버지가 부재했던 버락 오바마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준 것도 마침 외할머니였다. 조부모의 기여는 지금의 고령화 사회, 곧 닥칠 초고령 사회에서 노인의 사회적 역할을 재정립하는 데도 중요한 대목이라는 것이 이 책의 시각이다.

 문제는 핵가족 위주인 요즘 같은 시대에 이를 어떻게 실천할 것이냐다. 첫 술에 배부르기는 어렵다. 이 책에서 본격적인 정답을 구하기는 힘들다. 격대교육에 대한 다방면의 논의를 위한 기본적인 발제로서 의미를 지니는 책이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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